대부분 선진국과 우리 국민 다수는
중국 오만함과 강압성에 고개 흔드는데
한국 야당, 좌파는 물론 지식인들도 침묵
이제 당당히 말하고 균형 잡을 때 됐다
무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 오른 북한산. 대남문에서 바라보는 백운대의 웅자(雄姿)는 수십 수백 번을 마주해도 장엄하다.
그런데 산성길을 걷다 보면 시골집 담벼락처럼 낮은 성벽이 다소 의아스럽다.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조선은 명(明)과 청(淸)으로부터 끊임없이 군사적 트집에 시달렸다. 심지어 왜 북쪽을 보고 성을 쌓았느냐, 성의 높이가 왜 이리 높으냐며 핍박해 대는 바람에 도로 허물거나 낮춰야 했다.”(도서출판 동문선 신성대 대표의 글)
실제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는 조선의 축성을 금지시켰다. 이후 숙종 36년 해적 피해를 입은 청이 방비를 강화하라는 외교문서를 보내옴에 따라 축성 금지가 사실상 해제됐고 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수축(修築)했다고 문헌은 전한다.
산을 내려와 식당에서 뉴스를 검색하니 퓨리서치센터가 24개국 3만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국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가 떴다.
중국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진 성인 비율이 일본 호주 87%를 비롯해 스웨덴(85%) 미국(83%) 캐나다(79%) 독일(76%) 등 모든 선진국에서 압도적이었다.
한국에선 77%였다. 2015년 37%→ 2019년 63%→ 2022년 80%로 최근 수년간 급격히 부정적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비율이 낮아진 국가는 인도네시아 케냐 나이지리아로, 중국이 대규모로 돈을 쏟아 부은 나라들 뿐이었다.
중국은 어쩌다 이렇게 세계의 밉상으로 전락한 걸까.
31년전 한중수교 직후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한국에 부임한 초대 주한 중국대사 장팅옌(張庭延)이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동아일보가 석간 때여서 기사 마감을 하느라 필자는 간담회에 다소 늦게 도착했는데 대사는 간담회 시작을 늦춘 채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장 대사는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로 “동아일보 없이는 간담회를 할 수 없죠”라며 반겼다.
당시 장면을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불러놓고 겁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은 싱하이밍(邢海明)대사와 비교해 본다. 수교 이후 중국의 태도는 갈수록 무례해져 8대인 현 싱 대사에 이르기까지 재임중 내정간섭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다.
물론 대사들의 오만한 언행은 반중정서라는 거대한 둑이 쌓이는데 흙 한삽 추가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중국 당국의 횡포에 시달리다 생산설비도 챙기지 못한 채 야반도주해야 했던 기업인들의 한탄이 쌓이고, 터무니없이 가로 채려는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 항목들이 늘어가고, 서울에서 재한 중국인들이 중국인권을 외치는 한국인들을 경찰 제지에 아랑곳없이 집단폭행(2008년 서울올림픽공원 폭행사태)하고, 대통령을 수행한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에 폭행당하는(2017년 문재인 대통령 방중 당시) 등 상대를 얼마나 쉽게 여기면 저러는가 싶은 일들이 강 하구에 퇴적물이 하나둘 쌓여 둑을 이루듯 지금의 반중정서를 형성한 것이다.
중국은 교장 선생님 앞에 불려온 학생처럼 공손하게 앉아 경청하던 이재명 대표의 태도를 한국 국민의 보편적 정서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 일본에 대해선 막말 폭언을 서슴지 않는 민주당과 좌파 활동가들이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유는 △무의식 속 사대주의, 소중화(小中華)주의의 잔재 △사회주의 종주국에 대한 심정적 유대감과 종속감 △현실을 도외시한 평화 우선 가치관의 영향일 것이다. 중국과 갈등하면 우리가 입는 피해가 크니까 수모를 당해도 갈등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중국의 심리전에 포섭된 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미국 상원의원, 영국 노동당 의원, 호주 지방선거 등 세계 곳곳에서 정치인 포섭을 위해 뇌물 선거자금 지원 등의 방법을 동원하다 적발됐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지식인 집단의 침묵이다. 과거 수년간 중국이 그 어떤 오만한 행태를 보여도 나서서 공개적으로 질타한 중국 분야 관련 교수나 전문가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는 중국이 오랫동안 쌓아온 친중파 육성 전술의 산물일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수많은 교수 전문가 등을 세미나 등 명목으로 초청해 선물 보따리를 안기고, 숱한 연구 용역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중국의 오만은 한국이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못한 탓도 크다. 임시방편적으로 당장의 피해 회피를 위해 우호적인 협조를 기대하고 중국의 비위를 맞춰 줬지만 지금의 중국은 보은과 신뢰라는 동양적 가치관을 중시했던 옛 나라가 아니라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보고서가 미국의 타겟이 중국이 아니라 중국공산당(CCP)이라고 명시하고 있듯이 우리도 지금 상대해야하는 공산당 정권의 특성을 명철하게 파악해야 한다.
중국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 모두 국제규범 기준에 맞게 품위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비판하고 반박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외국인 건강보험 제도 개선안, 지방선거 투표권 개선안은 합리적이며, 국제 기준과 상호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사사건건 다 반대하는 민주당과 좌파언론들은 당장의 중국 이익 옹호가 오히려 국민의 혐중 정서를 강화시켜 한중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6·25전쟁 왜곡도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6·25를 김일성의 남침전쟁이 아니라 38도선을 넘어 침공해온 미 제국주의 세력을 인민해방군이 격퇴한 대미항쟁으로 교육받고 있다. 지구상 인류 중 13억 명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알고 있는 것이다.
먼 장래 통일 후 논의될 문제이긴 하지만 1907년 청일 간 간도협약으로 중국 땅이 되어버린 간도 문제에 대한 연구도 축적해야 한다.
중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경제적 강압조치를 외교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미리 입법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달부터 방첩법을 시행하고 있으나 우리는 기술 탈취 행위를 적극적으로 방어할 법체계가 미비하다.
중국 기업이 한국 업체를 인수합병(M&A)해 한국 기업으로 탈바꿈한 뒤 미국과 유럽연합(EU) 수출을 노리거나, 핵심 기술을 탈취해 가는 경우도 빈발할 수 있다. 이에 대비해 미국은 2018년 FIRRMA(Foreign Investment Risk Review Modernization Act·외국인 투자 위험성 검토 현대화법)을 만들어 장관급 위원회가 외국인 투자를 심사한다. 일본도 이런 기구가 있다. 미국은 미국 자본의 해외 투자를 심사하는 법안까지 제안돼 있는 상태다.
일본은 2010년 희토류 수출금지 등 중국의 무역보복을 당한 뒤 2011년에 총리실에 장관급 경제안보 부서를 만들고 관련 부처들의 조직을 강화했다.
우리 기업들이 당하는 불공정한 피해에 대해서도 당당히 얘기해야 한다.
성주 골프장을 맞교환 방식으로 사드 기지 부지로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는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112개에 달했던 마트는 물론 백화점 호텔 복합단지 사업 등을 접어야 했다. 만약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현지에서 정치적 이유로 이런 보복을 당했다면 국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더 어이없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눈치 보기였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 대규모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방중하면서 롯데는 제외시켰고, 2018년 2월 방중한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는 12개 중국진출 기업 대표를 불러 간담회를 하면서도 롯데는 안 불렀다.
중소기업인들이 당한 피해는 더 참담하다. 손실을 견디다 못해 사업을 청산하려면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 절차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다. 그 기간에도 인건비는 계속 지불해야 한다. 망해도 그냥 망하게 놔두지 않고 골병들여 죽이는 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방향은 옳게 잡았지만 당장의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때마다 흔들릴 기미가 보인다.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최근 정부 일각에선 중국이 싱 대사를 교체하고, 한국도 중국 체면을 위해 주중 대사를 교체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설령 아이디어 차원이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싱 대사는 투명인간 취급하면 된다. 대사로서 아무런 역할도 못한 채 한국 내 중국의 신뢰자본만 갉아먹는 시간이 길어지면 중국 정부 스스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오만하고 힘자랑을 일삼는 국가 옆 국민일수록 주눅 들면 안 된다. 따질 건 따지면서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 성벽 높이까지 간섭하고 군림해도 감내해야 했던 변방의 약소국이 아니다. 기울어진 균형추를 당당하고 냉정하게 균형으로 맞춰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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