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비극 이후 교사들이 가장 듣고 싶을 말 [광화문에서/이은택]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4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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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지난달 13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 연방 교육장관 미겔 카르도나(48)의 인터뷰를 실었다. 사법부 판결들부터 이념 갈등, 학력 저하 논란, 교사 처우 개선 요구까지. 우리와 사안은 다르지만 미국 교육도 몸살을 앓고 있었다. 카르도나 장관은 “지금은 국가가 교사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때”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초1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우리 교육 현장이 암담한 시점에서 굳이 미국 장관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이력 때문이다. 그는 인구 6만 명 남짓한 코네티컷주(州) 메리든의 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을 가르치는 평범한 교사였다. 20여 년간 학교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그는 교장, 주정부 교육위원을 거쳐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 초대 교육장관에 임명됐다.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학교와 교사들을 이끄는 카르도나 장관을 보면서 최근 들었던 하소연이 떠올랐다. 교사 사망 사건 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교사들은 기자에게 “그들은 학교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사건 이후 일련의 상황을 복기해 보자. 고인이 근무했던 초교 교장은 “학교폭력 신고 사안이 없었다”며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문을 서둘러 냈다. ‘신고 사안’이 아니었을 뿐 학폭은 있었다. “돌이킬 수 없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라”는 넷플릭스 드라마 ‘D.P. 2’ 속 대사가 떠오른다. 정부는 문제의 원흉을 학생인권조례로 지목했다. 한 교사는 “조례가 부담되는 것은 맞지만 교권이 무너진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추스르고, 사회적 논의를 주도해야 할 국가교육위원회는 ‘애도’만 남기고 사라졌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권 보호 대책을 발표하면서 인공지능(AI) ‘교육청 챗GPT’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부모 상담에 사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교수 출신 관료’의 한계였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 학부모 민원실을 만들고 소송비 지원을 늘리겠다고 한다. 한 교사는 “윗사람들은 결국 뒤로 숨고 민원실에서, 법정에서 최종 책임은 교사 혼자 지라는 뜻”이라며 냉소했다. 교육 수장이 교사 출신이었다면 조금은 다르지 않았겠냐는 토로도 나온다.

문제는 앞으로다. 아수라장이 된 학교를 목격한 20, 30대 젊은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고 있다. 20년 차 고교 교사는 “젊은 후배들이 학원, 기업,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로 옮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교직을 준비 중인 예비 교사들도 지금의 상황을 싸늘하게 지켜보고 있다.

카르도나 장관이 타임 인터뷰 중 한 말이 있다. “요즘 교사들이 매우 지쳐 그만둘 생각도 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번아웃(burnout·극도로 지침)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당신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당신을 지지하는 그러한 정부를, 바로 지금 당신은 갖고 있다.”

승진 기회가 남은 교감과 교장, 다음 정치적 진로를 고민 중일 교육감, 총선 출마설이 나오는 장관이 교사와 학부모들 사이에서 무엇을 고민 중일지 충분히 짐작은 간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비극의 고리를 여기서 끊으려면 교장이, 교육감이, 장관이 카르도나처럼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 교사들의 리더는 바로 나라고. 내가 최종 책임자라고. 내가 지지하고 보호할 테니 나를 믿고 따라오라고 말이다.

#동료의 비극#번아웃#미국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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