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 마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0〉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4일 23시 45분


그러나 울지 않는 마음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타고
버스에 앉아 울지 않는 마음
창밖을 내다보는 마음
흐려진 간판들을 접어 꾹꾹 눌러 담는 마음

마음은 남은 서랍이 없겠다
없겠다
없는 마음

비가 오면
비가 오고
버스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


나는 다만 기다리는 것

(하략)


―박소란(1981∼ )

그 사람 왜 좋아하냐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좋은 데에는 이유가 없다. 어느 순간 ‘아!’ 하고 좋아지는 거다. 박소란 시인의 작품은 그렇게 좋아지는 시다. 잔잔하게 다가와 오래 수런거리는 시. 첫 시집 제목처럼 ‘심장에 가까운 말’의 시. 이런 시를 좋아하신다면 박소란 시인이 정답이다. 나도 언제 새 시집이 나오나 서점을 기웃거리는 중이다.

특히나 그의 시는 힘들 때 꼭 쥐고 읽는 시다. 이 작품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병원에 두고 돌아오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제정신일 수 없지만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참는다. 자칫하면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아 창밖의 간판들에 집중한다. 이렇게 그의 작품에는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마음과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 다시 일어나 보려고 혼자 끙끙거릴 때 그의 시를 읽으면 먼저는 눈물이 나고 다음에는 위안을 얻게 된다. 쓰러지는 것보다 버티는 게 더 힘들다. 우는 것보다 울지 않는 게 더 어렵다. 이 시인에게는 좌절을 어떻게든 버티는 힘 같은 게 있다. 슬프고도 강인한 시를 만났다.

#울고 싶은 마음#박소란#슬프고도 강인한 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