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에도 통일부엔 칼바람이 분다. 소속 공무원의 4분의 1을 줄일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등 내부는 이미 꽁꽁 얼어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통일부를 없애려는 정부조직법은 통과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통일부는 존치보다는 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이는 통일부가 어떤 일을 하는가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통일을 하지 말자는 여론이 해마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통일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통일 의식 조사에서 ‘선호하는 남북의 미래상’으로 통일된 단일국가를 선택한 비율은 17%였다.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를 선호한 사람은 52%였다. 또 응답자 중 17.6%만 통일 비용 조달을 위한 세금 인상에 찬성했고, 9.7%만 통일을 위해 현재보다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감내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돈 문제는 현실적이고 민감하다. 아마 올해 조사에선 분단을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눈물 흘리던 세대는 이제 소멸됐다고 봐도 된다. 여론을 중시하는 정치인이 국민이 원하지 않는 통일을 굳이 추진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런 국민 의식이 잘못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합리적이다. 가족, 친척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빡빡한 현실에서 얼굴도 보지 못한 북한 동포를 위해 내 지갑을 선뜻 열기는 어렵다. 더구나 아프가니스탄이나 소말리아와 동일하게 빈곤국가로 분류된 북한은 얼마나 도와줘야 잘살지 가늠조차 안 된다.
여론이 이렇게 바뀌는데도 한국의 통일교육은 여전히 쌍팔년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학교 통일교육안을 보면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저렴한 노동력’을 극찬한다. 이건 교육을 빙자해 아이들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하면 북한이 저 꼴로 살 리 만무하다. 통일돼 해외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진 세상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개성공단처럼 150달러 남짓 월급을 받으며 일할까. 통일되면 처음은 힘들지만 나중엔 훨씬 더 이득이란 논리도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란 성경 구절과 다를 바 없다. 망할지 창대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이쯤 되면 통일교육을 하지 말자는 말이냐는 반론도 나올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 통일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 다만 이젠 통일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통일 의식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통일은 국민의 소원이나 의무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통일이 된다면 그건 아마 대다수 국민들에겐 소원 성취가 아니라 ‘원치 않은 사고’일 수 있다.
문제는 이 사고가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란 점이다. 준비 없이 당할 때 그 재앙은 상상할 수 없이 파괴적일 것이다.
당장 내년에 북한 체제가 붕괴된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에게 대책이 있는가.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휴전선을 뚫고 내려올 때 우리가 그걸 막을 능력이 있는가. 한반도 정세 불안으로 한국에 투자했던 외국 자본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면 우리는 외환위기 사태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불행한 시절을 맞게 될 것이다.
북한 같은 반인륜적 퇴행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다만 사람이 죽는 것은 확실하되 언제 죽는지 알 수 없듯이, 김정은이 언제 죽고 북한 체제는 언제 붕괴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웃 나라 일본은 언제 닥쳐올지 모를 대지진의 공포를 안고 산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오고야 말, 한 번 오면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통일이란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통일교육과 준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제 통일은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것이 됐다. 사고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자세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통일을 하지 말자는 여론이 높은 젊은 세대도 더는 통일에 무관심해질 수가 없다. 북한 체제의 붕괴가 현실화되면 경제활동을 하는 젊은 세대야말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야 남북이 함께 망하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북한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할지를 연구해야 한다. 그게 21세기의 통일 준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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