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바꿔 놓았다. 천재적 발상으로 사건을 통쾌하게 해결하는 우영우를 보며 ‘자폐 장애인은 이상하다’는 편견을 버리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드라마다 보니 실제 그런 변호사가 나오기 힘든, 녹록지 않은 현실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불과 1년 뒤 웹툰 작가 주호민 씨 고소 사건으로 분위기가 반전되는 형국이다. 지난해 9월 주 씨의 아들이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내린 사건이 고소까지 이어진 것에 대해 여론은 주 씨가 과했다는 분위기다. 특수아동을 둔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이들의 자녀들이 ‘어쩔 수 없는 미운 오리 새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렵다. 주 씨가 2일 낸 입장문에서 교사에 대한 선처 탄원서를 내겠다면서 ‘열 살짜리 자폐 아이를 성에 매몰된 본능에 따른 행위를 하는 동물처럼 묘사’하는 것은 삼가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이사건은 서이초 교사 사건과 겹치면서 학부모들의 ‘내 새끼 우선주의’ 및 교권의 추락과 연결시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유명인에 대한 가십성 흥미까지 곁들여 있다. 물론 일반교사에 비해 반복적인 도전행동(문제행동)에 시달리는 특수교사들에 대한 보호 장치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전국특수교사노조가 최근 전국 특수교사 297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학생들의 도전행동으로 다친 적이 있는 교사가 무려 90%에 육박한다. 문제가 터져도 4명 중 3명은 학교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시급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볼 수 있는 특수교육계의 버거운 현실은 조명되지 않고 있다.
자폐스펙트럼 학생을 비롯해 시각, 청각, 지적, 정서적 장애 등 특수교육 대상자는 11만 명. 5년 새 1만 명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특수교사 인력과 시설은 태부족이다. 특수학급당 학생 정원은 4명이다. 현장에선 2명을 보살피기도 빠듯한데 정원을 초과하는 게 예사다. 대상자 70%가 다니는 일반학교 내 도움반(특수반)과 통합반의 존재도 지방자치단체마다 들쑥날쑥하다. 원하는 곳에 가려면 이사를 가거나 장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2023학년도 신규교사 선발 과정에서 유·초등 특수교사를 500여 명 줄이고, 중고교 특수교사도 전년 대비 3분의 1로 줄인다고 해 논란이 됐다.
주씨 아들이 다닌 학급도 정원 초과였다. 법대로라면 추가 학급을 만들어야 하지만 보통은 그냥 교사에게 맡겨버린다. 해당 교사가 주위의 평가대로 보기 드물게 훌륭한 교사였다면 무거운 짐을 지고 헌신했을 것이다. 대신 그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수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교사가 장애 학생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기 어렵다면 안 그래도 근심이 많은 부모들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수교육의 현실을 잘 아는 사람들은 “둘의 상황이 이해는 간다”며 “누구나 악성 부모, 학대 교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열악함과 편견에 맞서기 위해선 교사와 부모가 같은 배를 탄 입장이다. 장애 학생을 상대하는 건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갈등을 이겨내려면 둘 간의 신뢰가 절대적이다. 주 씨가 발표한 입장문들에서 평소 담당 교사와의 유대 관계가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영화 ‘원더’(2017년)는 선천성 얼굴 기형으로 27번 수술받은 어기(어거스트)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헬멧을 벗고 생활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기의 담임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옳음과 친절함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택하라.” 교사와 부모, 장애와 비장애 누구든 함께하는 공동체를 위해 꼭 가져야 하는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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