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규제로 꼽히는 인증 규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현장의 하소연이 커지고 있다. 유사·중복 인증이 적지 않은 데다 인증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아 경영의 족쇄가 되고 있다. 정부 규제혁신추진단은 지난 1년간 불합리한 인증 규제를 개선해 인증 비용을 낮췄다고 자찬하지만 현장에선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완구, 가구 등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회사들은 색상이나 크기가 조금만 달라져도 새롭게 인증을 받아야 한다. 재질이 같아도 똑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직원이 10명 남짓인 회사가 연간 수천만 원의 인증 비용을 내야 하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두루마리 휴지가 25m냐, 30m냐에 따라 인증을 달리 받아야 한다는 데는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폐쇄회로(CC)TV 제조업체들은 올해 들어 갑자기 공공기관에서 보안성능 품질인증을 추가로 요구해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이미 여러 인증을 받고 있는데 다음 달부턴 특정 기관의 인증을 의무적으로 또 받아야만 관공서 납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품 하나 인증 받는 데 반년씩 걸리는데 수십 종의 제품을 단기간에 인증 받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라 매출 급감이 불가피하다.
매 정부마다 인증 규제 개선을 약속하는데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은 ‘인증 장사’로 돈을 버는 ‘인증 카르텔’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사고 면피용으로 추가로 인증을 요구한다. 인증 종류가 많고 복잡할수록 인증기관의 수수료 이득은 커진다. 인증기관은 정부나 유관기관 퇴직자들의 재취업 통로가 된다. 인증을 쉽게 받도록 도와준다는 컨설팅업체도 생긴다. 인증 규제를 무기로 관료, 인증기관, 컨설팅업체가 공생하는 카르텔이 생기는 것이다.
새로운 인증이 나와 비용이 추가되고 인증 절차가 길어져 제품 출시가 지연되면 중소기업은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표현처럼 규제가 기업들에 ‘손톱 밑 가시’가 아니라 ‘목에 들이댄 칼날’이 되는 셈이다. 유사·중복 인증은 통폐합하고, 인증 절차를 간소화해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한국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제대로 갈아엎고 규제에 기생하는 카르텔도 도려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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