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시간을 찾아서[공간의 재발견/정성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0일 23시 42분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중국에 너무 가고 싶어.” “뭐? 중국에 왜 갑자기?” “아니, 그 중국 말고 중국음식점.”

아내가 최근 직장을 그만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 “그래!” 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사람이라 왜? 조금만 더 하지, 같은 주저의 말은 할 수 없었다(물론 속으로는 걱정이 많다). 걱정이 가장 많을 사람은 바로 그녀일 것이다. 이미 퇴사를 경험해 보니 그건 단순히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서 아득하더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다시 무엇을 해야 하나. 끝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심란할 그녀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니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돌아보니 오랜만의 데이트였다. 바쁜 와중에 서로 시간을 맞춰 평일에 맛난 걸 먹은 날엔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을 부부의 날로 정해 이렇게 맛난 것도 먹고 산책도 할까?” 제안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그 중국집은 오전 10시에 영업을 시작해 오후 1시면 문을 닫는다. 하루 3시간만 영업하는 셈이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이 그렇다. 그마저도 재료가 소진되면 미련 없이 문을 닫는다. 이곳에 다녀오는 날이면 “이렇게 영업을 하신 지가 꽤 된 것 같던데,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영업 끝나면 뭐 하시려나? 얼마나 좋으실까?” “일하실 때도 집중해서 신나게 하실 듯” “이런 게 지속가능한 인생인데 말이지” 같은 말을 꼭 하게 된다.

짜장면과 짬뽕으로 배를 채운 후에는 당연히 카페를 갔다. 좋은 곳이 있다며 휴대전화를 꺼내 그곳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여주던 그녀가 아들 단속하듯 말했다. “여기 촬영 금지야. 인스타그램 계정 태그해 여기저기 알리는 것도 원치 않으신다고 써 있어. 본인 자리에서 조용히 한두 컷 찍는 것만 가능할 거야.”

신선했다. 모두가 알리고 증명하고 자랑하기 바쁜데 ‘저희는 괜찮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이라니. 카페는 과연 아름다웠다. 환하고, 널찍했다. 원목 스피커에서 재즈 음악이 깊은 사운드로 흘러나왔다. 습관처럼 사진을 찍는 부산스러움을 내려놓으니 그곳의 분위기와 공기가 겉돌지 않고 깊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쪽에 마련된 책장에서 제주에 사는 유명 화가 김보희의 그림 산문집 ‘평온한 날’과 존 버거의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를 가져와 읽었다. 카페의 주인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찰칵 소리 없이 이렇게 평온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본인이 꿈꾸던 직장의 모습이기도 했을 테고. 존 버거의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한다.’ 당장의 돈과 성공 대신 찬찬한 시간을 택한 사람들의 공간은 돌고 돌아 바쁘게만 흘러가는 손님들의 마음도 조용히 찾아 주었다.

#중국음식점#시간을 택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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