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된 한국 드라마 ‘형사록’은 총기 사용에 따라 운명이 엇갈리는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룬다. 흉악범을 검거하고도 총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은 경찰관. 그리고 딸의 목에 칼을 겨눈 인질범에게 선뜻 총을 쏘지 못하는 주인공 김택록 형사의 모습은 대한민국 경찰의 오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지난달 21일 조선(33)이 서울 신림역에서 흉기 난동을 벌여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2주 넘는 동안 대한민국은 ‘살인 예고’ 공포에 휩싸였다. 3일 분당 서현역에서 최원종(22)이 차량과 흉기 난동으로 14명의 사상자를 냈고, 국민들은 번화가와 백화점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다니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라는 평가를 받던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런 상황에 내몰리게 됐을까.
‘형사록’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동료가 죽을 위기에서 총을 사용해도 징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 흉악범을 검거한 ‘공로’보다 흉악범이 다치지 않아야 할 ‘인권’이 더 중시되는 상황. 마약조직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동료가 위험에 처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총을 쏴야 하는지 경찰끼리 언쟁을 벌이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딸을 붙잡은 인질범에게도 선뜻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주인공까지. ‘형사록’은 공권력을 행사할 때 고려하고 감수할 게 너무 많은 한국 경찰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공권력이 이렇게 고민하고 머뭇대는 사이 한국은 ‘묻지 마 범죄’와 살인 예고가 난무하는 사회가 돼 버렸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흉기난동에 대해 “경찰력을 총동원해 초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했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총기를 적극 활용하라”고 일선에 지시했다. 법무부는 살인 예고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공중 장소에서 흉기 소지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폭력사범 검거 과정에서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할 때 정당방위를 적극 적용하라”고 대검찰청에 지시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공권력 행사를 적극 보장하고, 살인 예고와 흉기 난동을 예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은 여전히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다. 정부만 믿고 선뜻 물리력을 행사했다가 피의자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형사 처벌을 받거나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에 따르면 법원이 공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했다고 인정해 경찰관을 처벌하거나 민사 책임을 지게 한 판례가 10건이나 있다고 한다. 경찰이 정당한 물리력 행사에 ‘면책권’을 부여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과도한 공권력 행사는 분명 제어해야 한다. 피의자의 인권도 소중하다. 하지만 소송과 처벌이 두려워 긴급 상황에도 물리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경찰의 호소에도 분명 이유가 있다.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가 난무하는 사회를 막으려면 공권력부터 바로 서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김택록’들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