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시에서 ‘칼’이란 자주 볼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시인들은 꽃이나 나무, 별이나 달빛을 간절히 쥐고 싶어 했지, 칼은 즐겨 잡지 않았다.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가까이에서는 이형기 시인, 조금 더 멀리서는 유치환 시인에게서 칼의 시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두 시인은 연약한 자아를 단련시키려는 뜻에서 칼의 이미지를 가져왔다. 다시 말하자면 내적이고 강한 정신력이 바로 칼의 진짜 의미였다. 결코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번 여름의 한 문예지에는 김소형 시인의 ‘여름의 칼’이 실려 있다. 이 시에서 칼을 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그는 칼로 참외를 깎고 있으며, 지면상 여기 다 싣지 못한 시의 후반부를 보면 달콤한 참외 조각을 나누어 먹고 싶다. 결코 남을 해하는 칼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우리는 이 ‘여름의 칼’이라는 단어에 멈칫하게 된다. “무서운 건 칼을 쥔 자의 마음”이라는 구절에서는 시선을 오래 떨구게도 된다.
왜 우리는 무서운 ‘여름의 칼’을 알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이 지경까지 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문제는 칼이 아니라 칼을 쥔 마음이다. 여름에는 여름답게 더위하고만 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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