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차량 및 흉기 난동으로 14명의 사상자를 낸 최원종(22)에 대해 알려졌을 때 눈길이 간 건 ‘3년 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고도 치료를 안 받았다’는 대목이었다.
2020년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 온 국민이 외출을 삼가던 시기였다. 당시 병원 내 감염을 우려해 내원을 기피하면서 어린이·청소년 정신질환자 65%의 증상이 악화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그리고 경찰에 따르면 최원종의 휴대전화 포렌식에선 지인들과 유의미하게 교류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정신적 문제를 지닌 채 고립됐던 건 올 5월 부산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도 마찬가지였다. 정유정은 최원종보다 두 살 위였지만 고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틀어박혔고, 역시 연락하고 지낸 친구가 거의 없었을 정도로 사회적 관계가 단절돼 있었다.
최근 신상이 공개된 2030 흉악범의 공통점은 열등감이나 피해망상에 시달리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특정 조직이 나를 스토킹한다’고 했던 최원종, ‘영어 실력이 안 좋아 스트레스를 받았다’던 정유정,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조선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포자기 상태에서 범행 은폐를 안 했거나, 현실감이 떨어져 금방 잡힐 정도로 대충 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은둔형 외톨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 중 범죄자는 극소수다. 또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원종 정유정 조선 모두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기간 고립을 당연시하고 각자도생하느라 사회와 단절된 이들에게 유의미한 관계나 적절한 치료를 지원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한국은 다이내믹하지만 그만큼 피곤한 사회다. 경쟁이 치열하고 속도가 빨라 뒤처진 이들이 조바심과 스트레스, 열등감을 느끼기 쉽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타인과 소통·교류하지 못한 청년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는 화려한 일상을 보면서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청년층 삶의 질 저하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 내각부의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9년 86%였던 만 29세 이하 청년층의 생활 만족도는 지난해 61%로 급락했다. 통계 조사 방식이 바뀐 영향을 일부 감안하더라도, 2011년 출간돼 화제가 된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소개한 이른바 ‘사토리 세대’(욕심을 버리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세대)가 더 이상 대세가 아니란 뜻이다. 한국의 경우 높아진 집값과 물가 때문에 청년들이 안분지족의 삶을 누리기 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회적 만남과 관계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껴본 적 없는 청년들에게 ‘이제 방역 조치가 완화됐으니 알아서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 필요하면 병원에 가 치료를 받으라’란 말은 ‘새만금 잼버리에 고생하러 왔으니 각자 알아서 고생하다 가라’는 말만큼이나 무책임하다.
올 초 발표된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고립된 청년은 61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사회의 불안을 키우는 상황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방치하는 대신 사회가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혹시 은둔 중이거나 고립된 청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두 가지만 얘기해 주고 싶다. SNS에서 보이는 화려한 일상은 허구이고 누구든 각자의 불안 속에 살고 있다고, 그리고 손을 내밀면 잡아줄 사람은 분명 어딘가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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