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과 두 번의 차이[서광원의 자연과 삶]〈76〉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6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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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대체로 크기가 크면 눈에 더 잘 보이는 법인데 불행은 반대인 듯하다. 큰 불행일수록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걸 보면 말이다.

2009년 8월 8일, 대만의 한 마을에서도 그랬다. 당시 태풍 모라곳이 몰고 온 폭우로 마을 앞 강이 넘치자 사람들은 근처 초등학교로 대피했다. 가끔 겪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땅이 흔들리며 우르릉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해발 800여 m에 이르는 뒷산이 무너져 내렸다. 꼭대기부터 무너져 내린 거대한 흙더미가 시속 100km의 속도로 산 아래 반경 1km를 덮쳤다. 밖으로 잠깐 나왔다가 목숨을 건진 생존자의 말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마을 주민 550명 중 500명이 이 더미에 깔려 숨졌다.

대만은 태풍이 자주 지나치는 곳이기에 예방 시스템이 잘돼 있는 곳으로 손꼽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누군가의 잘못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니기도 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왜 예상치 못했을까?

그때까지 산사태는 산의 경사가 35도 이상인 곳에서 일어나는 게 상식이었다. 이 마을 뒷산은 25도 경사인 데다 사고 전에도 특이사항이 없었다. 문제는 바로 이런 상식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강수량이 늘다 보니 땅속 기반암이 이전보다 더 많은 수분을 품고 있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이걸 감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축적되는 위기여서 더 그랬다.

이번 여름에 우리 역시 겪었듯 예전엔 어디서 어쩌다 한 번 일어나던 이런 일들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이런 일이 사건 사고로 나타날 때마다 붙는 ‘기록적인’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세상의 여러 분야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 복잡계 관점에서 이런 현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한 번과 두 번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항상 변하기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두 번 일어난다면 거기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두 번 일어난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이슬람의 격언 그대로다. 한 번과 두 번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차원이 다를 수 있기에, ‘어쩌다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두 번 이상 일어난다면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큰 불행일수록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건 앞의 산사태처럼 보이지 않게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자연이 보내는 신호다.

#불행#태풍#산사태#자연이 보내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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