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정부의 재정 집행 진도율이 5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1∼6월 총 351조7000억 원을 지출해 본예산(638조7000억 원)의 55%를 쓴 것이다. 이는 관련 통계를 공표한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당초 정부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경기 전망을 토대로 형편이 어려운 상반기에 재정의 65%를 앞당겨 집행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예년보다 진도율이 낮아진 것이다.
재정 집행 진도가 이처럼 떨어진 것은 올해 역대급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데 따른 영향이 크다. 상반기 국세 수입은 1년 전보다 40조 원 가까이 급감했는데, 이대로라면 연간 44조 원의 세수 펑크가 예상된다. 불필요한 예산은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지만 자칫 세수 부족을 이유로 미리 잡아놓은 예산까지 제대로 집행하지 않으면 경기 부진이 가속화할 위험성이 크다.
통상적으로 재정을 조기 집행하는 것은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 지출이 소비·투자·일자리를 늘리고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버팀목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19년 이후 상반기 재정 집행 목표는 줄곧 60%를 웃돌았고 실제 집행률도 이를 뛰어넘었다. 그런데 올 상반기 역대 최고의 목표를 잡아놓고도 집행률을 12년 만에 최저로 끌어내린 것은 사실상 정부가 경기 침체를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상반기 최장 무역적자와 수출 및 민간 소비, 투자의 동반 부진이 계속될 때 성장을 뒷받침해야 할 정부 재정의 역할을 포기한 셈이다.
하반기에도 경기 반등을 어둡게 하는 대내외 악재가 쌓이고 있다. 특히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효과에 기댔던 수출 회복은 고사하고 중국 부동산발 위기가 우리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칠 충격에 대비해야 할 판이다. 중국의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 1%대 성장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재정이 경제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 먹구름이 짙어 가는데 재정 집행마저 위축되면 경기 회복 속도는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우선은 재정을 최대한 조기 집행하고 연말에는 경기 상황을 봐가면서 재정의 유연한 대응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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