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상 동기 범죄’ 또 재탕 대책… 원인부터 규명해 예방책 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8일 0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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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테러 예고, 경찰 고양시청 수색 강화 경찰특공대가 17일 경기 고양시청에서 수색견을 동원해 폭발물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국내 주요시설에 대한 폭파 협박 메일이 접수됨에 따라 고양경찰서와 경기북부청 경찰특공대, 육군 제1군단 폭발물 제거반(EOD)이 고양시청 종합민원실 및 본관, 문예회관 등에 대한 폭발물 탐색을 진행했다. 사진=뉴스1
폭탄 테러 예고, 경찰 고양시청 수색 강화 경찰특공대가 17일 경기 고양시청에서 수색견을 동원해 폭발물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국내 주요시설에 대한 폭파 협박 메일이 접수됨에 따라 고양경찰서와 경기북부청 경찰특공대, 육군 제1군단 폭발물 제거반(EOD)이 고양시청 종합민원실 및 본관, 문예회관 등에 대한 폭발물 탐색을 진행했다. 사진=뉴스1
정부가 어제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최근 연이어 발생한 ‘이상 동기 범죄’에 관한 정부 합동 대책을 발표했다. 흉악 범죄에 엄정 대응하기 위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추진하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며, 정신질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게 인프라를 확충하고 중증 정신질환자는 판사가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도 검토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날 “모든 수단을 동원한 범정부적 총력 대응”을 다짐했지만 구체적인 대응 방안들은 기존 대책들을 재탕한 수준이다. 경찰은 최근 ‘이상 동기 범죄’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는데 정부 합동 대책에서는 ‘묻지 마 범죄’라는 언론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서울 신림역과 경기 분당 서현역 사건 이후 온라인에서는 모방 범죄를 예고하는 글까지 난무하면서 사회 전체가 불안감에 위축돼 있는 상태다. 정부 부처 간 용어 통일도 안 돼 있다니 사태에 대한 인식이 안일한 것 아닌가.

정부가 “법정 최고형의 처벌”이나 “가시적 위력 순찰” 같은 공허한 대책만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용어 혼선에서도 나타나듯 범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묻지 마 범죄’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때가 2000년인데 심층 연구는커녕 범죄를 정의하고 공식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이제라도 관련 범죄 기록을 바탕으로 가해자들의 인구학적, 사회 심리적, 발달사적 특성과 다른 범죄와의 차별적 특징을 분석해야 한다. 이상 동기 범죄자 중에는 정신질환자나 은둔형 외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정신질환자와 외톨이들은 남에게 해코지하지 않는다. 어떤 사회 심리적 환경에서 범의가 발화하는지 파고들어야 범행의 동기와 원인을 찾아내고 형사 사법, 보건 의료, 지역사회 단계에서 내실 있는 예방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여의도 흉기 난동,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등 비슷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묻지 마 범죄’라며 과거 대책을 되풀이했고, 불평등한 사회와 소외가 근본 원인이라는 진단이 뒤따랐다. 공동체 복원이라는 장기 과제 해결은 요원한 가운데 ‘묻지 마’라는 명명 자체가 직접적인 대책 부재의 알리바이가 된 것은 아닌가.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는 공포를 조장하는 반사회적인 범죄에 대해 언제까지 ‘묻지 마’ ‘이상 동기’라는 모호한 정의 뒤에 숨어 불평등한 사회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상 동기 범죄#재탕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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