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은 롯데 자이언츠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해다. 고 박동희와 신인 염종석이 마운드에서 크게 활약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고독한 황태자’로 불렸던 윤학길 전 롯데 2군 감독(62)이 17승을 거두며 우승에 힘을 보탰다.
그해는 그가 고독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시즌이었다. 약한 팀 마운드 사정상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1986년 롯데에 입단해 1997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그는 100경기 완투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선수 시절 그렇게 많이 던지면서도 그는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다. 타고난 건강 체질인 그는 요즘도 가벼운 산행과 걷기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부산은 해운대나 광안리 등 바닷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곳곳에 큰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산들이 꽤 있다. 그는 “장산(해발 634m), 금정산(802m), 백양산(641m) 등이 ‘부산 3대 산’으로 불린다”며 “고교나 대학 친구들과 함께 자주 산에 간다. 가벼운 등산을 한 뒤 내려와 소주 한잔하는 게 인생의 재미이자 즐거움”이라고 했다.
해변길도 자주 걷는다. 그의 집이 있는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걸으면 편도로 한 시간∼한 시간 반이 걸린다. 그는 “부산에 여행 오시는 분들은 대개 차를 탄다. 그렇지만 정작 부산 사람들은 경치를 즐기면서 걷곤 한다”고 했다. 해파랑길이 시작되는 이기대 해안산책로도 그가 추천하는 부산의 ‘걷기 명소’다.
2019년 한화 코치를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난 그는 요즘엔 ‘윤지수 아빠’로 더 유명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중국을 완파하며 한국 여자 펜싱 사브르 역사상 최초로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이 된 윤지수(30)는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윤지수는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6바우트에서 11점을 추가하며 역전의 발판을 놨다. 윤 전 감독은 “펜싱 단체전도 야구처럼 보직이 있다. 나는 주로 선발로 많이 뛰었는데 지수는 마무리로 나설 때 더 잘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윤학길-윤지수 부녀는 ‘올림픽 가족’이기도 하다. 1984년 상무 소속이던 윤 전 감독도 그해 열린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야구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닌 시범 종목으로 치러졌다. 그는 “경기장이 LA 다저스의 홈구장인 다저스타디움이었다. 그곳에서 한국 팀의 첫 승을 내가 거뒀다. 박찬호보다 훨씬 빨랐다”며 “다저스타디움 첫 피홈런 기록도 내가 갖고 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선수 때부터 지도자 시절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그는 요즘 모처럼 여유로운 삶을 산다. 그는 “아흔이 넘은 노모를 보살펴 드리고 지수의 선수 생활을 응원하면서 지낸다”고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재능기부위원으로 야구와의 인연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에는 충북 보은에서 열린 유소년 투·포수 육성캠프에서 중학교 3학년 투수 40명을 대상으로 투구 동작과 기술 등을 가르쳤다. 그는 “앞으로의 인생도 딱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야구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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