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남녀 한 쌍이 서 있다. 화려한 의상과 여자가 착용한 값비싼 장신구는 이들의 높은 신분을 드러낸다. 몸짓으로 보아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 같지만 얼굴에는 왠지 근심 걱정이 서려 있다. 대체 이들은 누구고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걸까?
이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판레인의 말년 대표작이다. ‘이삭과 레베카’(1665∼1669년·사진)가 제목이지만, 오랫동안 ‘유대인 신부’로 불렸다. 이는 19세기에 한 미술품 수집가가 결혼식에서 딸에게 목걸이를 선물로 주는 유대인 아버지를 그린 것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그림 속 인물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소장처인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성경에 나오는 이삭과 레베카를 묘사한다고 설명한다. 이삭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그는 마흔에 레베카와 결혼했지만 20년 동안 자식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도 첩을 두지 않을 정도로 아내를 사랑했다. 부부는 살던 마을에 기근이 들자 목초지를 찾아 그라르로 떠났다. 이스라엘인과 적대 관계였던 필리스티아인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곳 사내들을 만났을 때, 이삭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기 위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워서였다. 여전히 불안했지만 두 사람만 있게 되자, 남편은 아내를 다정하게 보듬으며 애정을 표현한다.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아내는 남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안도하는 듯하다. 렘브란트는 바로 이 순간을 포착해 화폭에 담았다.
배우자든 자식이든 사랑하는 가족은 나를 던져서라도 지키고 싶은 존재다. 렘브란트는 63년 굴곡진 인생 마지막에 이 그림을 그렸다. 이른 성공으로 귀족적인 삶을 누렸지만, 세 자녀와 아내를 일찍 여의고, 파산과 생활고로 비참한 노년을 보내던 시기였다. 어쩌면 화가는 지켜주지 못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이 그림에 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해로한 성경 속 부부가 자신과 아내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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