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손효림]함께하며 성장… 단절의 시대, 주목받는 연극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5일 0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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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동아리 지원자 껑충… 외로움에 “같이하고 싶어”
사람 온기 속 소통-협업하는 연극의 가치 다시 조명

손효림 문화부장
손효림 문화부장
“연극은 혼자서는 못해서 좋아요.”

사람이 부족해 늘 허덕이던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연극 동아리가 2021년 회원 모집 공고를 내자 50명이 몰려들며 공통적으로 한 말이었다. 이 동아리는 2018, 2019년까지만 해도 공연을 올리는데 필요한 최소 인원인 20여 명을 확보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동기, 선후배를 설득해 한 명 한 명 채워 나갔다. 취업을 위해 각종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연습 시간이 많이 필요한 연극 동아리는 인기가 없었다.

팬데믹이 덮치며 2020년, 2021년 비대면 수업이 전면 실시됐고 캠퍼스는 적막에 싸였다. 2021년, 동아리에 새로 필요한 인원은 30여 명인데 50명이나 지원하는 이변이 생긴 것. (2020년에는 뽑지 않았다) 당시 동아리 회장은 “예전에는 희망하기만 하면 무조건 ‘모셔’ 왔는데, 처음으로 지원서를 받고 면접까지 봐서 회원을 뽑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그렇고, 다른 연극 동아리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지원자들은 “같이 모여서 뭔가를 하고 싶다”고 했단다. 외로움에 시달린 학생들에게 연극이 일종의 탈출구가 된 셈이다.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동아리 출신 중 광고회사, 방송사 등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취업한 경우가 꽤 많아진 것. 공연을 하려면 배우, 연출가, 조명·음향 감독, 무대디자이너 등이 논의를 거듭하며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생각이 다르면 설득하고, 때로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 수십 명의 관객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 한다.

이는 회사 업무에 필요한 주요 자질이기도 하다. 하반기 채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요즘, 한 대기업 임원은 “젊은 사원들 가운데 메신저가 아니라 얼굴을 보고 말하거나 전화 통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같이 원활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 MZ세대 중에서는 전화 공포증인 ‘콜포비아(Call Phobia)’ 때문에 스피치학원에서 전화 통화 방법을 배우는 이들도 있다.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진 연극이 단절의 시대에 논리적이며 명료한 표현, 공감을 바탕으로 한 협력이라는 특징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극단 연습실에 가보면 대사의 의미, 전달 방법과 그 이유 등을 하나하나 고민하고 논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극은 사회를 반영하고 인간과 삶의 본질을 꿰뚫기에, 이를 곰삭혀 체화하다 보면 내면도 깊어진다. 국내 최고 권위를 지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들을 때마다 이를 명징하게 확인하게 된다. 연극인들은 자기만의 언어로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전한다.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만 줄줄이 나열하다 끝나는 경우는 못 봤다.

“연극은 내가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줍니다. 내 안의 것도 보고 바깥의 것도 보게 하면서요.”(배우 지현준) “‘날아가 버린 새’의 주인공이 상처로 가득 찬 마음속 검은 비닐봉지를 비워내듯, 이 작품을 만나는 모든 분들도 자신 안에 있는 검은 봉지를 비우는 용기를 냈으면 합니다.”(작가 장지혜) 배우 생활 20년 만에 연기상을 받은 남명렬 씨의 소감은 웃음 터지면서도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소망 질투 자책 애증 부러움 불운 호기 분노…. 동아연극상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었습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연극을 시작했는데, 수상이든 연기든 자기를 내려놓을 때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시대, 연극 동아리의 인기는 연극이 지닌 본질적인 가치를 또렷하게 비추고 있다.

#사람 온기#소통#협업#연극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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