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민의힘이 그제 내년도 예산안에 담을 내용을 심의했다. 당정은 예산안의 초점을 ‘재정 건전성’에 두겠다고 하면서도, 전국적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우선 배정하는 데 합의했다. 지역별로 고루 편성한 고속철도, 지하철, 신공항 등의 대형 예산을 두고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수도권에서는 인천발 고속철도(KTX)와 경기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 조기 개통, 서울 지하철 노후 시설 개선에 예산이 투입된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대구 도시철도 엑스포선 신설, 광주 아시아물역사테마체험관 조성, 전남 인공지능(AI) 첨단농산업융복합지구, 충남 서산공항,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 등도 예산 사업에 포함됐다.
당정은 민생경제 활성화, 지역 교통난 해소를 편성 이유로 내걸었지만 사업 면면을 볼 때 ‘지역별 나눠 주기’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작년보다 3조 원 줄어든 올해 SOC 예산이 내년에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야당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예년처럼 여야 의원들이 ‘쪽지예산’을 끼워 넣는 일이 벌어진다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다.
반면 내년 세수 전망은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올해 실적에 따라 기업들이 내년에 낼 법인세는 최대 40%까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인세는 국세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주요 세목이다. 예년에 납부 순위 1, 2위를 차지하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실적이 사상 최악이어서 내년에 낼 세금은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2%로 0.1%포인트 낮춘 만큼 부가가치세, 소득세 세수도 비상이다. 40조 원 넘게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올해보다 더 큰 세수 위기가 내년에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 당정의 발표가 그대로 예산 편성으로 이어진다면 정부가 여러 차례 강조해온 긴축재정 의지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자기 지역에 정부 SOC 예산을 끌어온 걸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정치권의 구태도 계속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총선에서 나올 표를 의식한 과시형 개발사업 대신 지역민의 실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정책 대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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