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 성공 논란과 과학의 조건[동아시론/이긍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5일 2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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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온·압 초전도체 “재현 안 된다” 보고 이어져
과학 이론·실험, 뒤늦게 인정받거나 잊히기도
탐구와 검증 계속할 뿐… ‘과학은 신중하다’

이긍원 고려대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부 교수
이긍원 고려대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부 교수
상온·상압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았다는 논문이 아카이브에 오른 지 한 달이 되었다. 과학계의 숙원이었기에 많은 기대와 논란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한두 개 실험실에서만 만들 수 있는 어려운 시료도 아니었고 성실하게 시료 제조 방법까지 공개했다. 일부 데이터 표기 기법이라든가 해석에서 바로 부실 지적이 나왔지만 논문 자체를 가치 없다고 볼 정도는 아니었다. 자연히 과학계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고 LK-99 재현 실험과 계산에 대한 보고가 나올 때마다 언론의 높은 관심 대상이 되곤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은 의견이 분분했고 어떤 주식 종목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갑작스레 등락하기도 했다.

그래서 초전도체라는 것인가 아닌가? 대중은 궁금하기만 하다. 국회의원 선거나 스포츠 게임처럼 깔끔하게 과학의 진리 또한 명쾌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지. 원래 과학이란 어슴푸레 보이는 것도 분명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것 아닌지. 네이처지에서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음에도 왜 세계의 과학자들은 LK-99라는 물질에 대해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선언을 하지 않는지 이상할 것이다.

철학사를 들춰보면 이성의 역사에서 과학은 점차 합리적 검증이 가능한 것으로 국한돼 왔다. 합리적 검증을 위해 탐구의 대상을 실험하고 관찰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합리적 검증이란 것이 명쾌한 방법이지만 꽤 힘든 일이다. 자연에 대한 인류의 이해 수준이 부족할 때도 있고 믿음이나 사회적 영향에 휩쓸릴 수도 있다. 한때 인종에 따라 우열을 구분할 수 있다는 우성학이 일부 국가에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우매한 가짜 과학의 대명사로 통한다. 사회적 편견을 이성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가 평평하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부족했던 중세시대에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심지어 합리적 검증을 통과하여 명확한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는 이론도 추후 그 적용 한계가 정해지곤 한다. 천체 운동을 명확히 설명해낸 뉴턴의 역학 이론도 미시의 세계로 가면 양자역학으로 대체되고, 거대한 우주로 가면 상대성 이론의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과학자는 논리가 적용되는 조건을 꼭 명확히 정하고 결론을 낸다. ‘오펜하이머’라는 영화에서 ‘핵실험을 하면 연쇄반응으로 지구가 다 탈 것이냐?’는 그레브스 장군의 질문에 오펜하이머 교수는 ‘그럴 가능성이 0에 가깝다’라고 대답한다. 그렇지 않다고 확언하기에는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이론과 데이터가 당시로는 부족하여 결론을 내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은 모호하지 않고 신중하다.

LK-99 논문에서는 1차원 초전도 현상이라는 새 이론이 적용되었고, 만들어진 시료에도 불순물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측정된 데이터에는 불순물의 효과와 초전도체라고 주장하는 물질의 효과가 섞여 있어 이를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합리적 검증을 진행하기에 까다로운 지점이 많다.

최근 네이처지 기사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인다고 언급된 화합물만 순수하게 분리하여 봤더니 초전도 현상이 보이지 않았고, 불순물이라 추정되는 물질이 초전도체 현상과 비슷한 상전이 특성을 보인다며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학자들의 의견을 보도했다. 그러나 옹색하지만 반론의 여지는 많다. 소위 불순물과 그 1차원 초전도체라 여겨지는 화합물의 상호작용으로 초전도 현상이 보일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1차원 초전도 현상은 더욱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액체질소가 끓는 77K(영하 196도) 이상 온도에서 나타나는 고온 초전도 현상조차 이론적으로 규명돼 있지 않다. 1차원 초전도 현상이라 확신할 합리적 검증이 없으니 이 또한 과학적으로는 불명확하다. 결론적으로 초전도 현상을 보지 못했다는 보고는 쌓여가지만 아직은 초전도 현상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

과학에서 이렇게 합리적 검증을 통과하기 힘든 보고나 주장은 추후에 어떻게 되는가? 어떤 과학자는 여기에 더 몰두하고 어떤 이는 관심을 접는다. 대부분은 몇 년간 간간이 논의되다가 서서히 학계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잊히다가 추후 인정받고 위대한 과학적 성과로 기록되는 경우도 드물게 존재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라든가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 그러하다.

과학은 명확한 합리적 검증의 토대에서 발전한다. 그렇다고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보고를 배제하는 서투른 선택도 하지 않는다. 그저 불명확하게 보이는 자연과 우주를 명징하게 그려낼 수 있도록 탐구와 합리적 검증을 지속할 뿐이다.


이긍원 고려대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부 교수


#초전도체 성공#논란#과학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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