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정이 드는데[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10〉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9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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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가 무슨 말을 하다 자동차 얘기를 불쑥 꺼낸다. 그에게는 아주 낡은 차가 있다고 한다. 엔진은 괜찮지만 차대가 너무 낡아 자동차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더 이상 운행할 수가 없게 된 차다. 상식적으로는 폐차장으로 보내는 게 최선일 듯하다. 그러나 그 차가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해준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 차를 폐차시키는 것은 그 차를 배반하는 것만 같다.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그 작가는 인간이 논리와 합리, 머리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낡은 차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오래된 친구를 버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무슨 규칙에 따라서 그러는 게 아니지 않은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 마음이 가는 대로.” 그렇게 친구가 된 사람을 아무렇게나 버릴 수는 없다. 정이 든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크게 보면 마찬가지다. 우리가 입던 옷도 정이 들면 쓰레기통에 버리기가 미안해진다. 바로 이것이 윤리의 본질이다.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에서 나오는 어떤 것. 소용이 없게 된 물건마저도 생명체처럼 여겨 버릴 수 없게 만드는 우리 안의 신비로움.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 J M 쿳시가 철학자들과 동물 윤리에 관한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하는 얘기다. 그러니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들이 말을 못 한다고 표현을 못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눈과 표정을 보라. 그것이 그들의 말이요, 언어다. 말 이전의 말이요, 언어 이전의 언어다. 그러니 이성과 논리만 앞세우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맥락은 조금 달라도 우리가 쿳시의 말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어느 때부턴가 곳곳에서 동물들이 버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는 물론이고 산과 들, 심지어 섬에도 동물들이 버려진다. 그들이 눈과 표정으로 ‘무언의 호소’를 하고 있음에도.

#인간#논리와 합리#무언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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