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간 연쇄적으로 발생한 묻지 마 강력 범죄나 이태원 참사 같은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사고 영상이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확산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던 시절 보도로만 접하던 사건들을 이제 시민들은 목격자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보게 됐다.
시간, 공간의 제약으로 기자들이 시민이나 폐쇄회로(CC)TV처럼 현장을 제때 포착하는 건 쉽지 않다. 사진기자가 급하게 뛰어가 보지만 찍을 수 있는 건 취재진의 진입을 막는 노란색 폴리스 라인일 때가 많다. 운(?) 좋게 현장에 사진기자가 있었더라도 보도 윤리가 쉽게 카메라를 들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시민들은 다르다. 뷰 파인더에 눈을 갖다 댈 필요도 없이 카메라 버튼에 손가락을 가볍게 대기만 하면 기록이 시작된다. 그렇게 근접 촬영된, 피를 흘리고 있는 피해자들의 영상들을 보면 기자도 놀랄 때가 있다. 만약 그런 장면들을 기자가 촬영했다면 엄청난 대중의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는 진부한 논쟁거리인 매그넘 사진가 케빈 카터가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 사진이 그 예다. 2013년엔 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한강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한 취재진도 자살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CCTV가 사건 현장을 기록하기도 한다. 신림동 칼부림 사건의 범행 장면을 포착한 건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설치된 CCTV 영상이었다. 스너프 필름처럼 가해자가 피해자를 칼로 수차례 찌르는 영상이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넷상에 퍼졌다. 과거엔 음성적으로 고어 사이트에나 공유됐을 법한 장면이었다. 특히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1분 이내 ‘쇼트폼’이 유행하면서 이런 영상물의 확산은 가속화되고 있다. 쇼트폼은 사용자가 영상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임의로 재생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 영상들은 사건 현장이 실시간으로 기록돼 있다 보니 범죄자가 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증거물이 된다. 또 사회적 공분을 일으켜 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촉진할 수도 있다. 시민들도 사고의 순간을 기록해야 한다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영상을 촬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순기능 외에 생각지도 못한 역효과도 있다. 먼저 유족과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으며 영상을 시청한 이들에겐 간접적인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기자도 일 때문에 반복 재생하던 이태원 참사 영상에서 인파에 깔려 괴로워하던 한 여성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나중에 합동분향소에서 영정 사진으로 그녀를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제일 큰 문제는 이런 영상들이 사회적 불만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 ‘모방 범죄’를 일으키게 하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신림역 사건의 범인도 범행 전 ‘홍콩 쇼핑몰 흉기 난동 사건’ 영상을 검색한 사실이 밝혀졌다. 영화나 소설 같은 허구가 아닌 실제 범죄 장면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란 왜곡된 생각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 이런 문제로 누리꾼들도 범죄 영상을 올리지 말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언론 입장에선 일반인들이 촬영한 사건 사고 영상들은 양날의 칼이다. 이런 영상들은 언론이 독자들에게 뉴스 형식으로 전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도 윤리 차원의 이슈가 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에 따르면 피해자 가족의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흥미 위주의 보도는 하지 않아야 한다. 또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받을지도 모를 상처뿐만 아니라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된 독자와 시청자들이 더 ‘강한 맛’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도 있다.
유해하지 않은 사실을 선별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던 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소셜미디어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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