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조직은 어떻게 잼버리를 망쳤나 [광화문에서/우경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30일 23시 36분


우경임 정책사회부 차장
우경임 정책사회부 차장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우여곡절 끝에 11일 막을 내렸다. 150여 개국 3만5000여 명의 청소년이 더위 속에서 ‘생존 게임’을 벌이다 사실상 대회가 중단됐다. 잼버리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백서를 남길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동아일보는 관계 기관의 전·현직 책임자를 인터뷰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단 한 명도 반성을 하지 않은 탓에 결국 백서는 쓰지 못했다(본보 8월 14일자 A1면).

여야는 대놓고 ‘네 탓’을 한다. 여당은 “전북도와 전 정부가 새만금 개발에 잼버리를 이용했다”고, 야당은 “여성가족부와 현 정부가 부실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새만금 신공항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됐기 때문에 화장실이 더러웠을까. 여가부가 폐지될 부처라 상한 달걀이 제공됐을까.

잼버리 파행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잼버리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 한국스카우트연맹 관계자에게 두루 물어봤다. 책임을 미루면서도 공통된 답이 있었다. ‘공무원이 할 일을 하지 않더라.’

잼버리 사태는 관재(官災)라고 했다. 기자와 통화한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문제 해결을 요청해도 조직위원회가 상전처럼 굴며 움직이지 않았다” “전·현 정부를 대리한 두 공동조직위원장 간 갈등이 심했다” “한국스카우트연맹, 전북도, 여가부가 소통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잼버리에서 의료 봉사를 했던 한 의사는 “관료 조직이 그 정도로 경직된 줄 몰랐다. 현장 상황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데 아무도 책임 있는 답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1년 전 잼버리 파행을 예고했던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화장실 위생 문제가 복잡한 정책인가, 엄청난 예산이 드나”라고 되물었다.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관(官)이 한국스카우트연맹 등 민(民)을 압도하는 기이한 구조로 치러졌다. 원래 세계잼버리대회는 청소년들이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스스로를 단련할 기회를 제공하는 행사다.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중요한 행사로 관료 조직은 거들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여가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가 참여한 비대한 조직위원회가 꾸려졌다. 집행위원회는 새만금 개발이 시급한 전북도로 별도 구성됐다. 정치적 의도가 끼어들고 나태한 관료 조직이 이를 방관하면서 ‘잼버리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최근 보도된 한국스카우트연맹 회의록을 보면, 독일은 “개영식이 다중 인파 관리 실패로 위험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조기 철수를 시사했다. 그러자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6일 콘서트에는 500명의 안전요원을 배치하겠다”고 했다. 포르투갈은 “증원이 아니라 똑바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일갈한다.

공무원들은 왜 움직이지 않았을까. 개막 이틀 차인 4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야영장 변기를 닦았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은 “냉방버스와 냉장냉동 탑차를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그제야 공무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동안 잼버리 현장에 리더십이 부재했다는 방증이다. 조직위원장이 몇 명이든 잼버리 대회 주무 부처는 여가부이고, 그 수장은 김 장관이다. 김 장관은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처음으로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누구의 책임인지는 감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관료조직#네 탓#잼버리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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