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초가을이라 밤 점차 길어지고, 청풍 산들산들 더더욱 서늘하네. 이글이글 무더위 사라진 고요한 초가, 계단 아래 풀숲엔 반짝이는 이슬방울. (不覺初秋夜漸長, 清風習習重凄凉. 炎炎暑退茅齋靜, 階下叢莎有露光.) ―‘초가을(초추·初秋)’ 맹호연(孟浩然·689∼740)
오랜 무더위를 씻는 맑은 바람을 즐기며 더러 풀숲에 반짝이는 이슬방울을 찾아냈던 가을밤 정경, 누구나 맛보았을 법한 정겨운 추억이다. 시골 마을에 특별히 고요한 계절이 따로 있을 리 없고 또 달빛 아래 이슬이 가을이라고 유난히 영롱할 것도 없으련만 시인에게는 가을의 맛이 예사롭지 않은 듯하다. ‘어느새 초가을’이라며 짐짓 계절 변화에 둔감한 척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가을의 발걸음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밤이 점차 길어지는’ 것조차 알아챌 만큼 섬세하게 관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는 평생 벼슬을 추구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낙향해버린 시인의 만년작.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 한가로이 마당을 거니는 것인지, 장안의 명사들과 교류했던 화려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불면의 외로운 밤을 견디는 중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당대 산수전원시파의 조종(祖宗)으로서 왕유(王維)와 함께 ‘왕맹’이라 추존되는 맹호연. 서른 후반 뒤늦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낙양 등지를 유람하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과거를 치렀지만 급제하진 못했다. 더욱이 우연히 당 현종을 배알한 자리에서 시를 읊었는데 하필이면 그중에 ‘재주 없어 명군께서 날 버리셨다’는 시구가 담기는 바람에 황제로부터 ‘내가 언제 그대를 버렸단 말인가’라는 핀잔을 들으며 그길로 속절없이 낙향해야 했던 시인. ‘황망 중에 보낸 30년 세월, 학문과 무예 둘 다 이룬 게 없구나. … 이젠 그저 술이나 즐길 뿐, 누가 다시 세상의 공명을 논하랴’라며 울분을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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