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에선 지난해 6·1지방선거 때 증평군수 선거가 화제가 됐다. 유명 배우 출신인 국민의힘 송기윤 후보가 부군수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재영 후보에게 301표, 불과 1.8%포인트 차이로 패한 것이다.
당선 가능성 설문조사에서 한때 15%포인트 가까이 앞질렀던 송 후보의 패인을 두고 지역사회에선 ‘군부대 이전 공약 때문’이란 말이 나왔다. 송 후보는 출마할 때 “증평에 있는 육군 37보병사단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송 후보가 간과했던 건 수도권에서 ‘기피시설’인 군부대가 지역사회에선 ‘필수시설’이란 것이었다. 상대 후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부대와 군인 가족은 지역 버팀목이자 상공인 경제를 살리는 축이다. 오히려 군악대 축제를 유치해 명품 군사도시로 발전시키겠다”며 역공을 펴 판세를 뒤집었다.
필자에게 이 얘기를 전해 준 중앙부처 고위 공직자는 “전국 지자체 상당수는 이제 기피시설이 없다”고 했다. 기피시설을 두지 않을 만큼 힘 있는 지자체가 많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소멸 위기에서 어떤 시설이든 유치해야 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다급한 지자체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자체에 군부대는 ‘가뭄의 단비’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대구시가 군부대 통합 이전 방침을 밝히자 경북 상주·영천시와 칠곡·군위·의성군 등 무려 5개 지자체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중 4곳이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 감소 지역이다. 강원도 접경 지자체도 최근 인구 감소 때문에 통폐합이 진행 중인 군부대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X사단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주민들의 손팻말이 군부대 철조망을 장식할 정도다.
대표적 기피시설로 꼽히는 교도소나 소각장도 마찬가지다. 경북 청송군은 여자교도소 유치를 위해 법무부를 설득 중이고, 강원 태백시와 전북 남원시도 교도소 건립을 확정했거나 추진 중이다. 역시 모두 인구 감소 지역이다. 광주시에선 올 7월 마감한 쓰레기소각장 이전에 6곳이 신청했다.
그렇다고 기피시설을 인구 감소 지역에 몰아넣는 게 지방 살리기 해법이 될 순 없다. 기껏해야 급한 불을 끄는 정도일 것이다. 신공항을 짓거나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역이 살아날 수 있는 근본 해법은 청년들이 돌아오고, 신혼부부들이 자리 잡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매력의 상당 부분은 진심에서 나온다. 지난달 충남 태안군 이원면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부부가 둘째를 낳았을 때 마을 곳곳에는 ‘우리가 너를 지켜주겠다’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2년 전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낳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내건 것이다. 서로에게 감동한 부부와 주민들이 쉽게 헤어지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어느 지자체가 매력적인지 도시에선 알기 어렵다. 그렇기에 일단 인연을 맺고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올해 일시 체류자까지 포함하는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했고, 거주 외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금 공제와 답례품 혜택을 주는 고향사랑기부제를 시작했다. 둘 다 지역이 도시민들과 인연을 맺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게 만드는 제도들이다.
마침 이번 주말(1∼3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선 ‘2023 A Farm Show―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가 열린다. 광역 및 기초지자체 243곳이 저마다 발산하는 매력을 한자리에서 경험하기 위해 주말 한나절을 투자하는 게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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