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어제 임시 이사회를 열고 김동철 전 바른미래당 의원의 신임 사장 선임을 의결했다. 김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와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을 지낸 4선 국회의원 경력을 갖고 있다. 주주총회 등 남은 절차가 마무리되면 한전 출범 62년 만에 첫 정치인 출신 사장이 나오게 된다.
부채 규모가 200조 원을 넘어선 한전은 현재 하루 이자만 70억 원이 넘는 전례 없는 재무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대로면 내년 신규 한전채를 발행할 수 없게 돼 자금 조달도 막힐 처지여서 고강도 자구책 시행이 시급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을 흔드는 대외 변수들까지 따져가며 이를 추진할 리더십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더구나 전력산업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한전의 새 수장으로 비전문가인 김 전 의원이 임명되는 게 꼬일 대로 꼬인 난제들을 풀어내는 데 적절한 선택인지 의문이다. 그는 한전은 물론 에너지 분야에서도 일한 경력이 없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지냈다지만, 그마저 9년 전인 2014년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을 재직했을 뿐이다. 정치가 초래한 한전 사태를 해결하는 데 정치인 출신 수장이 적임자라는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다. 사상 초유의 한전 적자는 원가 대비 지나치게 낮은 전기요금 책정 등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물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제 논리에 반하는 정치적 입김을 김 전 의원이 제대로 막아낼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잖아도 에너지 관련 공기업 사장에 줄줄이 비전문가가 임명되면서 직무 적합성과 신뢰도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전산업개발 사장에 함흥규 전 국가정보원 감찰처장,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한국가스공사 사장에는 각각 정용기, 최연혜 전 의원이 선임됐다. 모두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다. 김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해당 분야에 대한 충분한 경력이나 전문지식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식의 인사가 반복되면 경영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장기적으로 공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실력과 경륜을 기준으로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겠다고 공언해온 현 정부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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