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실용이 아니라 이념 대결로 가는데 어떻게 중도층을 잡을 수 있겠나.”(국민의힘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40%도 안 나오는데, 인재를 데려다가 몰살시키려고 하느냐. 인재 영입은 하나 마나다.”(국민의힘 수도권 의원)
일부 국민의힘 수도권 관계자는 지난달 28일부터 1박 2일간 열린 당 연찬회가 끝난 뒤 결국 고개를 돌렸다. 여권 안팎에서 불거진 ‘수도권 위기론’을 놓고 치열한 격론 끝에 타개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당 지도부는 ‘십고초려’ 인재영입론을 앞세워 진화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수도권 위기론’이 국민의힘 내부 갈등을 불러일으킨 지 한 달이 지났다. 수도권 위기론은 지난달 3일 신평 변호사의 “국민의힘 자체 여론조사 결과 내년 총선 때 수도권이 거의 전멸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는 발언이 시작이다. 이후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윤상현(4선·인천 동-미추홀을), 안철수 의원(3선·경기 성남 분당갑)이 수도권 인물난과 당 지도부의 위기의식 부족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됐다.
● 실용과 무관한 이념 대결에 우려
여당 수도권 의원들의 위기론 우려는 최근 이념 대결에 불이 붙으면서 오히려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 이어 연찬회 만찬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이념”이라며 실용보다 이념을 우위에 두는 취지로 발언하며 반공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까지 번지면서 ‘집토끼’라 불리는 보수 지지층보다 중도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수도권에서 마이너스 효과를 마주할 상황에 놓였다. 한 수도권 의원은 “중도층, 무당층은 ‘과연 어떤 당이 내 삶에 도움이 될까’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며 “집권 여당으로서 이들을 끌어안을 민생 정책을 찾는 것이 지도부의 숙제”라고 제언했다.
여당 관계자는 “경기 일부 지역은 ‘제2의 호남’이라 불릴 정도로 사실상 당선하기 어려운 ‘험지’로 변화될 우려가 있다”며 “정부 여당의 거부(veto·거부)층,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3040세대가 많이 사는 지역은 최대치로 지지율을 끌어모은다고 해도 40%도 안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주도하는 이념 대결에 당 지도부가 쓴소리 한마디 못 하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지역의 한 당협 인사는 “(이념 대결은) 수도권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 프레임”이라며 “총선에서 이기려면 이념 대결은 관둬야 한다. 당에서 용산(대통령실)에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라고 얘기를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지도부 “위기론은 지도부 흔들기”
국민의힘 지도부는 위기론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단 위기론 타개책으로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겠다는 방침이다. 김기현 대표는 만찬회에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좋은 인재라면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모셔야 한다”고 약속했다. 한 지도부 인사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채우기 위해 물밑 영입에 주력하고 있다. 일부 지역은 인물이 너무 많아서 경합 중”이라며 “영남, 강원 출신 지도부가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뭘 알겠냐고 하는데 차곡차곡 좋은 인재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당의 핵심 관계자는 “86 운동권 세대를 대체할 만한 젊고 역량이 담보된 전문가 그룹 등이 국회로 들어와 판을 바꿨으면 한다”는 바람도 비쳤다.
다만 당 내부의 온도 차도 감지된다. 한 서울 지역 의원은 “인재 영입이 당선이 유력한 지역에 지도부 입맛대로 갈아 끼우겠다는 소리로 들린다”며 “수도권 대부분이 험지인데 어떤 인재를 어디에 배치할지 구체적인 복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여권 인사들이 대거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려면 당장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지도부 내부에선 “위기론자들의 본심은 지도부 흔들기”란 반응도 나온다. 내년 총선에서 제1당도 무난한 상황에서 위기론을 부각해 지도부를 흔들어 당권을 노린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친윤 핵심이자 내년 4월 총선 공천 실무를 총괄하는 이철규 사무총장은 지난달 16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멀쩡한 배에 구멍이나 내는 승객은 승선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수도권 위기론이 지도부 리더십을 흔들고 당 내분을 조장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 당내 “외적 변수에 철저히 대비해야”
당 안팎에선 수도권 ‘올드보이’들의 역할론에 무게가 실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원내대표를 지낸 나경원 전 의원을 필두로 한 권역별 중진 활용론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의 당협 조직위원장 인선안에 든 김성태 전 원내대표(서울 강서을), 오신환 전 의원(서울 광진을)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당내 비판은 넘어야 할 산이다. 조강특위 결과를 지켜본 한 수도권 원외 인사는 “당 입장에선 호감도는 낮지만, 전국적 인지도를 갖고 돌파하겠다는 궁여지책을 내놨으나 총선 대비용 최선의 전략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당내에선 외적 변수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이 대표 사법리스크에만 기댈 수 없다는 견해다. 한 수도권 의원은 “우리가 그간 선거에서 이겼던 건 문재인 전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 대표 3명에 대한 반감 덕분이었다”며 “당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하나만 믿고 있는데 사법 절차가 정리돼 이 대표가 없는 민주당에 대한 대비도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낮은 대통령 국정 지지율과 대통령실 전략을 그대로 수용하는 여당의 상황이 위기론의 본질이란 지적도 있다. 현재 수도권 여당 상황이 ‘여권 프리미엄’을 누리기 어렵고 신선하고 유능한 인물들이 모여들 토양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십고초려든 백고초려를 하든 용산에서 발행한 자기앞수표를 들고 가야 (인재 영입이) 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 “역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에 밀렸다”
위기론 찬반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여권 내부에선 “수도권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위기고 어려웠다”는 공감대가 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 121석 중 103석(서울 41, 경기 51, 인천 11)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16석(서울 8, 인천 1, 경기 7)을 당선시켰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당선자 비율이 2 대 8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수도권 111석 가운데 81석을 확보해 26석에 그친 민주당 전신 통합민주당에 앞선 이후 19대, 20대 총선에서 내리 뒤처졌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 43석, 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 65석으로 4 대 6 비율이었고, 2016년 20대 총선은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 35석, 민주당 82석으로 3 대 7이었다.
한 수도권 여당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은 ‘우리도 수도권이 위기다’라고 말한다”며 “그만큼 수도권 인구가 늘면서 의석수도 늘고 총선에서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결국 수도권에서 얼마나 의석수를 확보하느냐에 여야 모두의 성패가 달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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