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문병기]라마스와미 돌풍이 걱정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3일 2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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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표심 트럼프식 ‘고립주의’로
커지는 국제 질서 불확실성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미국 야당 공화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인도계 기업가 비벡 라마스와미가 주목받고 있다. 하버드대 출신으로 생명공학 회사를 이끌며 30대에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라섰고, 선출직은 물론이고 어떤 공무도 맡아본 적 없는 정치 신인이다. 올 2월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도 그를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소위 ‘영 앤드 리치(Young & Rich)’ 정치 지망생의 경력 쌓기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다수였다.

하지만 최근 라마스와미의 지지율은 잠시나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력한 대체자로 꼽히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열린 첫 공화당 경선 토론에선 ‘비벡멘텀’(비벡+모멘텀)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노련한 경쟁 후보들 속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급기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라마스와미를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현지에서는 라마스와미의 돌풍을 ‘트럼피즘(Trumpism)’의 확장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는 “기후 위기는 사기”라고 주장한다. 또 작은 정부를 위해 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 등을 폐지하고 연방 공무원 75%를 해고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자신을 비판하는 흑인 여성 의원을 향해선 “현대판 ‘큐 클럭스 클랜(KKK)’”이라며 백인 우월주의 테러단체와 비교했다. 금기를 넘나드는 과격하고 노골적인 표현이지만 지지층을 열광하게 한다는 점에서 ‘트럼프 2.0’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 이후의 트럼피즘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면 라마스와미를 보라”고 했다.

그의 외교 정책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좀 더 과격하고 노골적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한 보수매체에 ‘실행 가능한 현실주의와 독트린의 부활’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자신의 외교 공약을 밝혔다. 요지는 고립주의 원칙의 ‘먼로주의’, 아시아에서 미군의 군사 개입을 축소한 ‘닉슨 독트린’을 결합한 외교 전략을 펴겠다는 것이다.

즉,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데탕트 시대를 열었듯 자신 또한 취임 첫해인 2025년 러시아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를 인정하고 러시아 제재를 해제하는 대신 중국 견제에 러시아를 동참시키겠다고 했다. 이어 “‘엉클샘(Uncle Sam·미국의 상징)’은 더 이상 ‘빨대(Uncle Sucker)’가 돼선 안 된다”며 일본, 필리핀, 호주 등 주요 동맹국에 국방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아시아 전력 배치를 압박하겠다고 했다.

그가 공약 속에서 언급한 아시아 주요 동맹국엔 한국이 빠져 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존경한다고 밝힌 닉슨 전 대통령 시절 2만 명의 주한미군 철수가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한국 방어에 대한 그의 생각을 짐작해 보기 어렵지 않다.

아직 지지율 10% 안팎인 그의 외교 공약이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의 돌풍 기저에 깔린 미국 유권자들의 정서는 우려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디샌티스 주지사와 라마스와미까지 공화당 표심은 트럼프가 표방했던 신(新)먼로주의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악관은 내년 미국 대선 이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3국 협력 제도화가 뒤집힐 우려에 대해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지지는 초당적”이라며 “이전 행정부는 ‘아웃라이어’(평균치에서 벗어난 예외)”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라마스와미 돌풍을 보면 예외 상황이라고 일축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라마스와미 돌풍#트럼프식 고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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