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중이다. 실제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일 이상의 노동과 열정을 바라는 ‘허슬(hustle) 문화’를 그만두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틱톡에 올라온 17초 분량의 짧은 영상이 전 세계로 퍼지며 삽시간에 유행이 됐다. 정해진 시간, 업무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업무만 하는 ‘조용한 사직’은 열정을 강요하던 기존 직장 문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조용히, 티 나지 않게 한다고 상사와 회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조용한 사직’에 대한 기업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조용한 해고(quiet cutting)’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 등 글로벌 기업에서 공식적인 구조조정 대신 업무 재배치, 직무평가 강화 등을 통해 직원 스스로 퇴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 클라우드컴퓨팅 기업 세일즈포스, IBM 등이 이 전략을 택했다. 해당 직원에게 박한 평가를 주고 승진 기회를 박탈하고 회의에서 배제하고 중요한 업무를 맡기지 않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코로나19는 전 세계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일에 대한 회의감으로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는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와 함께 ‘조용한 사직’이 유행이 됐다. 재택근무, 원격근무의 확산도 한몫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진정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은 생산성 저하, 조직문화 저해, 인력 유출 등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포브스는 “조용한 해고는 기업이 구조조정 효과를 보면서도 대량 감원을 피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조용한 해직과 함께 ‘조용한 고용(quiet hiring)’도 서구 사회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새로 풀타임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기존 근로자의 역할을 전환해 업무를 맡기는 식이다. 정규직 대신 단기 계약직을 뽑아 대응하기도 한다. 태업하지 않는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대신 고용하는 방법도 조용히 일자리를 앗아간다. 나가는 사람이 많아져도 신규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용한 사직’에 기업들이 ‘조용한 해고’로 대응하면 앞으로 노사 간에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직원은 회사를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회사는 직원을 이윤 창출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조직에는 미래가 없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일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조용한 사직’도 하나의 방편이었다. 이젠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일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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