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란 전쟁 상황을 겪었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사상자 통계라는 걸 받는다. 전사자가 몇 명, 부상자가 몇 명, 하지만 전쟁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을 받는 사람, 망가진 인생을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사람의 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코로나도 그렇다. 사업이 파산하고, 가게가 문을 닫고, 평생을 빚더미에서 살아가야 하며, 가정과 행복이 파괴된 삶을 우리는 헤아릴 수도 없다.
어이없게도 방역 조치, 예방 조치와 같이 팬데믹을 극복하고 인명을 구하려는 방법이 ‘인생 파괴 조치’도 되었다. 무자비하고, 인정사정없는 정책을 시행한 국가도 있었다.
아마 본질적인 문제는 팬데믹에 대해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역사 속에 수많은 팬데믹이 언급되어 있지만, 모두가 그것을 과거 일로 치부했다. 진지하게 과거사를 연구하지도 않고, 과거인의 행동을 비웃고 조롱만 하던 지식인들도 넘쳐난다.
17, 18세기에 유럽을 휩쓴 페스트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도주해서 텅 빈 도시지만, 골목마다 시신들이 널려 있다. 동물들이 시신을 훼손해서 시신들의 상태는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 처음 페스트가 발병했을 때, 사람들은 헛된 저항을 시도한다. 발병자의 집을 못질해서 폐쇄하고 통금, 격리 조치를 한다. 이건 시작일 뿐이고, 집단적인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 역병을 극복할 수단이 없는 국가와 도시의 정부는 무슨 짓이든 한다. 처참하고 잔혹한 광경이 펼쳐진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빈정거렸다. “페스트는 계급관계를 심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공격하고 부유한 사람들을 면제해 준다.” 물론 부자들에겐 좀 더 많은 옵션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비꼬는 동안 진정한 교훈을 놓친다. 좀 더 진지한 지식인도 ‘오늘날에는 어떤 질병이 와도 그런 광기의 드라마는 재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지식인이라면 광기와 어리석음은 언제든지 재발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현대인의 장점은 과거의 사례를 분석하고,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다는 것뿐’이라고 가르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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