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중국 주요 도시의 화웨이 매장 앞에는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사려는 사전 예약자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미국의 대중 규제를 뚫고 3년 만에 내놓은 5세대(5G) 스마트폰이자, 자체 제작한 첨단 반도체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공식 판매를 시작한 3일은 공교롭게도 중국의 78주년 ‘항일(抗日)전쟁 승리 기념일(전승절)’이었다. 제품을 처음 공개한 지난달 29일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항미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미국 기술 분석업체 테크인사이츠는 스마트폰을 분해해 보니 7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들어 있었다고 4일 밝혔다.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하고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가 생산한 ‘기린 9000s’였다. 화웨이는 2020년 10월 내놓은 메이트 40 시리즈에 대만 TSMC의 5나노급 ‘기린 9000’을 탑재했지만 이후로는 미국의 제재로 TSMC 칩을 쓸 수 없었다.
▷화웨이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를 상징한다. 2019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화웨이에 대한 미국 기업의 수출 금지를 단행했다.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산 장비로 부품을 만드는 외국 기업에까지 수출 규제를 확대했다. 지난해부턴 14나노 이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장비의 수출도 막았다. 그런데도 규제 기준을 뛰어넘는 반도체를 들고 나온 것이다. 미국 언론에선 “중국이 미국의 뺨을 때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물론 7나노는 최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있다. 2018년에 나온 애플 아이폰 12세대에 들어간 칩에 쓰였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가 3나노 제품을 양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4, 5년가량 뒤졌다. 하지만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첨단 생산 장비의 수입이 막힌 상황에서 초미세 공정의 반도체를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간과 비용은 더 들지만 낮은 수준의 장비로 반도체 회로를 여러 번 그리는 ‘멀티 패터닝’ 기술로 극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선언이 실제인지 허장성세인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는 점에서 대량 생산은 힘들 수준이란 관측도 있다. 미국 제재 이전에 비축된 대만 TSMC의 칩을 사용했을 것이란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마냥 무시할 순 없다. 1일 독일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IFA 2023’ 부스의 절반 이상을 중국 기업이 차지할 정도로 ‘테크 굴기’는 위협적이다. 한국으로선 초격차 기술을 갈고닦아 더 달아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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