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르면 내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4일 보도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10∼1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 참석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회담이 성사되면 2019년 이후 4년 반 만으로, 김정은의 해외 방문도 그 후 처음이다. 미국 백악관도 “김정은이 러시아와의 무기 협상을 정상급에서 논의하기를 원한다는 정보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정은과 푸틴이 만나려는 것은 그간의 은밀한 거래를 넘어 이젠 대놓고 정상 간 밀착을 과시하며 북한 재래식 무기와 러시아 첨단 기술 간 맞교환을 안팎에 공식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7월 말 러시아 국방장관의 북한 열병식 참석 이래 논의의 급속한 진전을 보면 그만큼 두 나라가 다급한 사정임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장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탄약과 군수품 고갈에 애를 먹고 있고,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의 기술적 한계에 부닥친 형편이다. 김정은의 방문지로 러시아가 새로 건설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나 태평양함대 정박지인 33번 부두가 꼽히는 것도 북한의 핵심 관심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북-러 회담은 ‘위험한 거래’를 예고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쇠락한 러시아지만 여전히 핵무기를 최다 보유한 군사 강국이다. 지대공미사일과 전투기 엔진, 잠수함 기술은 중국도 탐내는 수준급이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군사위성과 핵추진 잠수함, 나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을 얻고자 한다. 러시아 기술 제공은 고도화하는 북 핵·미사일 개발에 한층 높은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고, 대외 도발과 협박을 일삼는 북한을 더욱 기고만장한 무법자로 만들 것이다.
신냉전 기류의 격화에 따른 북-중-러 밀착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지만 그 급가속은 세계 정세를 더욱 요동치게 하는 불안 요인이 될 것이다. 이웃 나라의 주권을 난폭하게 유린한 푸틴과 불법 무기 개발에 혈안이 된 김정은의 연대는 이미 전 세계의 경계심을 낳고 있다. 더욱이 김정은은 5년 전 한미 정상을 상대로 보여준 현란한 외교 행보를 재가동할지 모른다. 이번엔 러시아를 지렛대 삼아 중국을 부추기며 신냉전 대결의 행동대장을 자처할 수 있다. 정부는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한미일 긴밀한 공조와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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