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9월 초, 빈센트 반 고흐는 ‘수확하는 사람이 있는 밀밭’(사진)을 그렸다.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한 지 넉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밖으로 나가는 게 금지되었기에 고흐는 병실 철창을 통해 바라본 풍경을 그렸다. 특히 황금빛 밀밭에 마음이 끌렸다. 병원에 머문 1년 동안 13점 넘게 밀밭 풍경화를 완성했다.
화면에는 뙤약볕 아래서 농부가 온 힘을 다해 밀을 수확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노란 밀밭은 푸른 색조로 칠해진 마을과 울타리로 완전히 분리됐다. 이는 정신질환으로 세상과 단절된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고흐는 보일 듯 말 듯 작게 그려 넣은 농부를 죽음의 이미지로 여겼다. 동생 테오한테 보낸 편지에 썼듯이, 농부가 베어 들이는 밀이 인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전에 그린 ‘씨 뿌리는 사람’과 반대되는 그림이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슬프고 비극적인 감정을 표현한 건 아니었다. 같은 편지에서 고흐는 “태양이 모든 것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환한 대낮에 발생한 죽음이기 때문”에 “슬픔은 없다”고 썼다. 씨를 뿌려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고 쇠퇴하고 소멸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에 죽음에 대해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밀밭은 고흐에게 영원한 자연의 순환과 인생의 덧없음을 의미했다. 농부가 죽음의 이미지라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희망을 상징한다. 비록 육신은 철창과 질병에 갇힌 신세였지만, 화가는 찬란한 태양을 통해 삶의 에너지와 희망찬 미래를 표현하고자 했다.
희망을 꿈꾸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던 걸까. 이듬해 여름, 고흐는 이 그림처럼 환한 태양 아래 밀밭에서 자신에게 총을 쏘고 말았다. 그렇게 37년의 짧은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예술로 자신을 구원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어쩌면 고흐는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이 밀밭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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