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발언의 강도를 확 높였다. “도대체 과학이라고 하는 건 (없고)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위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원자력 전문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설명을 부정하는 더불어민주당 등을 겨냥한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100이란 숫자다. 뚜렷한 과학적 근거나 실효적 대응책 없이 “제2의 태평양 전쟁” 운운하는 야당의 태도는 ‘1+1=2’라는 자명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에는 ‘1+1을 3 또는 1+1을 4라는 세력’, 좀 많이 간다 해도 ‘1+1을 10이라는 세력’ 정도로도 족하다. 사전에 준비했든, 즉흥적으로 떠올렸든 대통령 내면의 ‘분노 게이지’는 100보다 낮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1+1=100’과 싸우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중간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미칠 심리, 정서적 효과다. 대통령의 표적은 ‘오염수 괴담’을 확산하는 세력일 터다. 하지만 머리로는 ‘1+1=2’를 받아들여도 그저 ‘찜찜하다’는 이유로 추이를 지켜보던 이들도 적지 않다. ‘희석한 오염수를 가져오면 마시겠다’는 과학자, 일부러 횟집에 더 자주 가는 사람과 달리 ‘안전한 건 알아도 그걸 왜 마시냐’, ‘그래도 회는 좀…’이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후쿠시마 바닷물의 방사능 검사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국민의 인식은 ‘1+1=2’에 점차 수렴하고, 괴담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통령이 ‘1+1=100이란 사람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 판단을 유보하던 이들이 합리적, 이성적인 쪽으로 돌아서는 속도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자기가 틀린 걸 알고, 고치려고 마음먹었다가도 옆에서 “넌 그게 틀렸어”라고 지적하면 반대로 엇나가는 게 사람의 심성이다.
윤 대통령의 공격적 숫자 표현과 관련해 현 정부 핵심 정책과제인 노동개혁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가 일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더 일하고, 놀 때 몰아서 쉬는 주 52시간제 개혁 방안을 내놨을 때다. 경직된 근무시간 체제는 개혁 필요성이 큰데도, 야당과 노동계는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주 69시간 근무’ 프레임을 앞세워 반발했다.
그때 윤 대통령이 대선 주자 시절에 했던 발언이 소환됐다.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구글, 테슬라 같은 빅테크도 초기엔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성장했다는 걸 강조한 것일 게다. 하지만 왜 하필 ‘120시간’인지 알 수 없는 이 말이 개혁의 걸림돌이 됐다. 대통령실은 결국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란 메시지를 내놔야 했다.
앞으로도 숫자 하나에 개혁 성패가 좌우될 일들이 예정돼 있다. 정부 국민연금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가 내놓은 연금개혁 방안에는 9%인 보험료율을 12∼18%로 인상하는 방안, 수령개시 연령을 66∼68세로 높이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이 부딪칠 최대 관건은 소득 대체율을 40%로 놔둘 것이냐, 50%로 올릴 것이냐가 될 전망이다. 대통령은 미래세대의 부담은 덜고, 연금제도 수명은 늘리는 쪽으로 국민을 설득할 의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성을 뜻하는 ‘로고스’, 감성적 측면인 ‘파토스’, 화자의 성품과 신뢰성의 반영인 ‘에토스’를 설득의 3요소로 꼽았다. 지금 윤 대통령은 이성적 측면인 로고스를 너무 강조하느라 국민의 파토스를 놓치고 있다. 이런 패착이 반복되면 개혁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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