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복종 또는 신뢰 관계를 지닌 개나 고양이와 달리 야생동물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물이다. 그들에게 무리 외의 다른 동물에 대한 복종이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고, 신뢰는 곧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야생의 삶을 기억하는 동물은 인간에게 길들여질 수 없다. 일본의 어느 동물원에서 인간에게 먹이를 받아먹어야 했던 아무르 표범이 울분을 참지 못해 속이 다 헐어 죽은 일화처럼.
어쩌면 야생동물이 동물원 또는 사육시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안타까운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 올 8월 침팬지 ‘루디’와 암사자 ‘사순이’가 우리에서 탈출하여 목숨을 잃었다. 3월에는 서울어린이대공원 얼룩말 ‘세로’가 탈출했다 생포되기도 했다.
탈주하는 동물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물원의 동물들은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다. 대부분 동물원에서 태어나 야생의 환경을 경험하지 못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동물원이 없다면, 동물원 생활에 이미 익숙해진 야생동물은 갈 곳이 없다. 결국 야생동물을 위해 동물원과 사육시설의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 이에 2013년 국제적 멸종위기종(CITES종) 사육허가제가 신설되었고, 사육관리기준이 강화되었다. 2015년에는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동물원 등록제를 통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야생동물의 비극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18년에는 퓨마 ‘뽀롱이’가 대전 오월드를 탈출했다가 사살돼 전국적으로 추모와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앙상하게 말라 ‘갈비뼈 사자’로 불렸던 수사자 ‘바람이’는 우여곡절 끝에 구조되어 청주동물원으로 이관되었지만, 여전히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되는 수백 마리의 곰들과 제2의 사순이들이 열악한 민간 사육시설에 감금된 채 살고 있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2022년 야생생물법에 ‘지정관리 야생동물’을 신설하여 그 수입 또는 반입을 금지하였고, 동물원(또는 수족관) 외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였다. 또한 영국의 ‘동물원면허법(Zoo License Act)’ 등을 참고하여 동물원수족관법을 전부 개정하면서 동물원을 ‘허가제’로 전환하고, 동물복지는 물론 질병과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전문 검사관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법 개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여전히 TV 쇼에서는 라쿤 같은 야생동물을 흥밋거리로 다루고, 동물원을 신기한 동물의 구경 장소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또 다른 ‘루디’와 ‘사순이’가 나올 수 있다. 야생동물은 사람의 보살핌의 대상이 아닌 지구촌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이웃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만큼 인식의 전환도 중요하다. 법 개정 취지를 널리 알리고, 동물권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제라도 야생동물과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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