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연한 결별[이준식의 한시 한 수]〈229〉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7일 23시 51분


산 위의 눈처럼 고결하고, 구름 사이 달처럼 밝아야 하거늘.
당신이 두 마음을 품었다기에, 결별을 고하러 찾아왔소.
오늘은 술잔 놓고 마주하지만, 내일 아침엔 작별하려 저 도랑가에 있겠지요.
도랑가 주춤주춤 배회할 때면, 도랑물도 동으로 흘러가 버릴 테지요.
처량하고 또 처량한 이 마음, 시집가선 절대 울지 말아야 하는 것을.
일편단심 곧은 사람 만나, 백발 되도록 안 헤어지길 바랐었건만.
댓줄기는 바람에 쉬 일렁이고, 물고기 꼬리는 물결에 마냥 하늘대지요.
남자라면 의리를 중시하거늘, 왜 재물에 마음이 움직였나요?

(皚如山上雪, 皎若雲間月. 聞君有兩意, 故來相決絕. 今日斗酒會, 明旦溝水頭. 躞蹀御溝上, 溝水東西流. 凄凄復凄凄, 嫁娶不須啼. 願得一心人, 白頭不相離. 竹竿何裊裊, 魚尾何簁簁. 男兒重意氣, 何用錢
刀為.)


―‘백발의 노래’(백두음·白頭吟)’ 한대 민가

상대의 변심에 대응하는 여자의 결별 의지가 결연하다. 백년해로의 꿈이 사라진 마당에 울며불며 매달리고 싶진 않다. 오늘밤을 끝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각자의 길을 가자는 서러운 호소를 내뱉는다. 쉬 흔들리는 대나무 줄기나 물고기 꼬리처럼 금전의 꾐에 넘어간 남자를 향해 야멸찬 원망을 퍼붓는 건 민요에서나 있을 법한 카타르시스. 여자의 지위가 미약한 봉건사회였지만 억눌린 심사를 담은 약자의 노래는 바람을 타고 입에서 입으로 거침없이 퍼져갔을 것이다.

첫 두 구절은 일견 시의 내용과 무관해 보이지만 시 서두에 비유를 사용하여 주제를 함축하는 기법은 중국 민가의 오랜 전통. ‘모름지기 애정은 순결하고 밝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혹 남자의 배신과 대비되는 여자의 정절(貞節)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백발의 노래’는 백년해로의 염원을 응집한 민중의 소리이지만, 같은 시제로 세월무상, 사회적 소외 등을 담은 작품도 적지 않다.

#결연한 결별#백발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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