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친일파 박춘금으로 드러난 대일본제국의 자가당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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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2000만 명(의 조선인)이 잠자코 있지 않을 것이다. … 내선(內鮮·일본 본토와 조선) 간에 유혈 참사를 보는 일이 없다고만은 볼 수 없다.” “우리들은 식민지가 아니다. 일본이 강하기 때문에 잡은 것도 아니고, 조선이 약하기 때문에 잡힌 것도 아니다.” “같은 국민이면서 차별적으로 다루는데, 야마토혼을 심어준다는 논리는 통할 수 없는 일이다.”

퀴즈 하나. 일제강점기 제국의회를 향해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은 누구일까. ①독립운동가 여운형 ②아나키스트 박열 ③친일파 박춘금.

뜻밖에도 정답은 ③이다.

오해가 있을까 싶어 미리 말하지만 박춘금(1891∼1973)은 명백한 반민족행위자다. 그는 친일단체를 육성하던 총독부의 원조를 받아 폭력단체 상애회를 조직하고 일본의 조선인 노동자를 착취했다. 동아일보가 총독부의 친일 폭력단체 구성을 비판하자 사장이었던 고하 송진우 선생 등을 유인해 폭행한 이력도 있다. 1924년 하의도 소작쟁의가 일어나자 상애회원을 동원해 농민들을 습격하는 등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노동쟁의, 소작쟁의, 반일운동 등 집회 때마다 깡패들을 동원해 탄압했다.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그를 ‘일본인의 집을 지키는 개’라고 불렀다.

역사가이며 사회학자인 오구마 에이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교수는 최근 국내 번역된 저서 “‘국민’의 경계: 오키나와·아이누·타이완·조선”(소명출판·원제 “‘일본인’의 경계”)에서 한 장을 할애해 그의 행적을 재조명했다.

저자가 특히 초점을 맞춘 건 박춘금의 제국의회 활동이다. 박춘금은 1932년 중의원 선거에서 도쿄 니시구에 입후보해 적지 않은 돈을 뿌리며 당선됐다. 현재까지도 조선인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유일한 인물이다.

박춘금은 그해 6월 첫 의회 등단을 시작으로 조선인에게 참정권과 병역의무 부여, ‘내지(일본 본토)’와 조선 간의 도항(渡航) 제한 철폐 등을 요구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했다. 조선이 식민지가 아니고, 조선인도 똑같은 제국의 신민이라면 차별하지 말고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근본적으로는 이의가 없다”면서도 시기상조를 내세우며 요구를 거절하거나 묵살했다. 일제가 내건 ‘내선융화’와 ‘일시동인(一視同仁·조선인도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천황의 동일한 신민이라는 것)’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박춘금의 당선부터가 일제로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일본 본토의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차별을 공공연하게 공언할 배짱도 없던’ 법의 공백 상태에서 예상치 못하게 조선인 의원이 출현했던 것.

책은 이처럼 일제가 동화를 표방했지만 차별한,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닌’ 존재들을 탐구하면서 ‘탈식민’의 길을 찾아간다. 저자는 조각난 팩트를 현재적 관점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물의 복합성을 드러내면서 마침내 감춰졌던 체제의 맨얼굴을 까발린다. 박춘금을 두고는 “그의 궤적엔 제국의 마이너리티들의 굴종과 저항의 양가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한다는 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친일파 박춘금#대일본제국#자가당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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