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 3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원유 감산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하면서 유가가 다시 급등세다. 10월엔 감산 조치를 종료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뒤엎는 전격 발표에 국제유가는 13개월 만에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이대로면 연말에 1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중국의 경기 부진 등으로 원유 수요가 당초 기대에 못 미치자 가격 방어 차원에서 감산 연장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는 서방의 유가 상한제 제재에 맞서 유가를 보란 듯이 끌어올리는 동시에 이를 통해 전비를 충당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을 것이다. 사우디는 관계가 냉랭해진 미국의 증산 요청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어 감산 기조는 한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수급 문제를 넘어 외교, 안보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가격 불안정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주요 산유국들의 인위적인 감산 연장 조치는 간신히 잡아가는 듯했던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다시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11월쯤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월가의 관측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주요국의 환율과 채권, 주식 시장이 연쇄적으로 흔들리면 부정적 여파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큰 국가들은 제조원가 인상으로 인한 기업 수익성 악화와 투자 위축 등의 문제도 각오해야 한다.
가뜩이나 꿈틀거리는 국내 물가 또한 더 높은 인상 압박을 받게 됐다. 소비자물가는 지난달 3개월 만에 다시 3%대에 진입한 상태다. 전월 대비 상승 폭(1.1%포인트)이 2000년 9월 이후 가장 크다. 여기에 유가 부담까지 가중되면 ‘2차 인플레이션’ 충격파를 피하기 어렵다. 추석을 앞두고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는 이미 비상이다. 에너지 수급과 가격을 조절해 가며 추가적인 물가 자극 요인들을 관리해 나갈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연말까지 평균 유가를 84달러로 상정하고 ‘10월 이후 물가 안정’을 점쳤던 재정당국의 느슨한 전망부터 즉시 수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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