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 주최 행사 참석으로 논란을 빚은 윤미향 의원(무소속)의 해명은 수시로 바뀌었다. 처음엔 “한국 단체가 주최한 줄 알고 참석했다”고 하더니 나중엔 “총련 혼자 주최한 게 아니라 100개 단체가 주최했다”며 말을 바꿨다. 한 유튜브에 출연해선 민단 주최 행사는 몰라서 불참했다고 했다. 앞서 페이스북에서 “민단에서 추도 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초대받지 못했다”고 한 발언과 달라진 것이다. 먼 옛날 일도 아닌데 해명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할 일인지 모르겠다.
역풍이 계속되자 윤미향은 “색깔론 갈라치기 말라”라고 항변한다. 누가 간토(關東) 대지진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행사 참석을 문제 삼나. 사전 접촉 신고도 없이 반국가단체 행사에 참석한 부적절한 행위를 문제 삼을 뿐이다. 없는 색깔을 덧씌운 것도 아닌데 색깔론 타령할 일은 아니다.
이 때문인지 윤미향의 한때 친정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물론 당 차원의 지원 사격도 없다. 굳이 총련 이슈가 부각될수록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윤미향을 정치적으로 손절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몇몇 강성파 의원들은 “총련이 간첩단체냐”며 윤미향을 옹호하기도 했다. 윤미향이 비록 1심에서 위안부 후원금 횡령으로 유죄를 받았지만 반일(反日)의 상징자산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총선은 한일전이다.’ 민주당 위성정당의 비례후보 윤미향이 3년 전 21대 총선 포스터에 내건 구호다. 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한일 갈등이 고조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한일 간 외교·통상 문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보다는 대결 구도로 판을 바꿔야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도 내부 문건에서 일본에 대한 ‘원칙적 대응’이 득표 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냈다. 한일전 캠페인이 철저히 총선 전략 차원에서 준비된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친일-반일 프레임이 본격 가동됐다. 일본 수출 규제 대응 예산이 포함된 추경예산안 처리가 늦어지자 민주당은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친일 세력’이라고 공격했고, 한국당은 여권의 총선용 반일-친일 프레임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나 공방이 격화될수록 당시 여권의 지지율은 올랐지만 야권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한일전이 당시 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지금 민주당 내부에서 ‘어게인 한일전’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도 이 같은 학습 효과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논란이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지도부 인사는 “이번 총선도 한일전”이라고 외치고 있다. ‘친일-반일’ 구도라면 총선에서 유리할 거라는 계산을 마친 듯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를 우려하고 걱정하는 국민 여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려와 걱정이 곧바로 정치적 선호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염수 방류를 우려하는 여론이 70%가 넘는데도 방류 반대를 외치는 민주당 지지율은 그 수준에 못 미친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등 여론 지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적지 않아서다.
오염수 방류 문제는 찬반 차원을 넘어 과학에 기반해 사실 관계를 짚어 보고 따지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과거처럼 죽창가를 부르며 투쟁을 독려하는 것은 퇴행적 민족주의가 아닐 수 없다. 총선이 축구나 야구 한일전 같은 대형 이벤트로 흘러가선 안 될 것이다. 낡고 식상한 레코드판을 돌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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