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8년 바이에른 공작이 후계자 없이 사망했다. 그의 후계 자리를 두고, 프리드리히 대제가 이끄는 프로이센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오스트리아가 맞붙었다. 당시 독일은 여러 제후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바이에른은 독일의 제후국 중에서도 강력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양국은 7년 전쟁(1756∼1763)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여서 본격적인 대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투를 회피하던 양측은 서로 보급대열을 노리며 상대 괴롭히기 전술을 사용했는데, 당시 부족한 국력, 식량 부족으로 전투보다 더 많은 희생을 초래했다. 굶주린 병사들이 서로 감자밭을 먼저 점거하고 감자 캐기 경쟁을 벌였다고 해서 감자 전쟁이란 별명이 붙었다.
감자는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졌지만, 독성 때문인지 어디서나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엉뚱하게 이 전쟁이 감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 주는 데는 공헌을 했다. 한편 프리드리히 2세는 독일에 감자를 보급하는 데 앞장서서 감자 대왕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 후로 감자는 독일인에게 아주 중요한 주식이 되었고, 아일랜드에서는 아예 국민을 먹여 살렸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아일랜드에서 감자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는 바람에 유명한 아일랜드 대기근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또 이 덕분에 아일랜드인이 신대륙으로 대거 이주했고, 아일랜드 혈통이 들어간 대통령이 17명이 넘게 됐다.
감자 전쟁은 감자 이야기만큼 훈훈하지는 않다. 적의 병사가 아닌 병참을 노리는 전술은 고대부터 사용되었다. 포위되고, 고립되고, 버림받아서 질병과 기아에 시달리는 군대의 이야기는 모든 전쟁사에서 가장 비참하고, 처참한 장면을 연출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보급과 의료의 부족이 점점 더 극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양측의 사상자는 정확히 보도되지 않았지만 이미 자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 분명하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이런 문제는 갈수록 악화되면 악화되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약 300년 전 감자밭에 있던 병사들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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