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어제 러시아에 도착했다. 김정은은 전용열차 편으로 10일 오후 출발해 사흘째 오전에야 북-러 접경인 하산역을 지났다. 김정은의 방러에는 군 서열 1, 2위 인사는 물론이고 주요 무기의 생산·개발 책임자들이 수행했다. 김정은-푸틴 간 회담은 오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러 무기 거래를 기정사실화하며 추가적인 제재를 경고했다.
김정은이 4년 반 만의 첫 해외 방문임에도 전통적 혈맹이라는 중국이 아닌 러시아를 먼저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냉전 종식 이래 북한 정권이 늘 먼저 찾고 자주 찾던 나라가 중국이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각각 1416km, 19km인 북-중, 북-러 국경선 길이만큼이나 차이가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김정은이 푸틴에게 먼저 가는 것은 ‘국제적 왕따(pariah)’로서 같은 처지인 데다 서로 주고받을 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웃 주권국가를 침략하고 핵·미사일로 세계를 위협하는 두 도발자는 이번 만남에서 겉으로는 경제협력이나 인도지원 같은 포장을 씌우겠지만 그 핵심은 북한의 포탄 로켓 등 재래식 무기와 러시아의 핵잠수함 정찰위성 핵미사일 등 군사기술을 맞바꾸는 거래에 있다. 그 위험한 거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더욱 기나긴 소모전으로 만들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한층 키울 것이다. 유럽과 동북아에 두 개의 신냉전 대결 전선을 만들어 서방의 대응을 분산시키려는 책동이다.
사실 북-러 간 군사협력은 오래전부터 예고됐던 것이고 은밀한 거래도 이미 서방에 포착된 바 있다. 러시아 측은 미국의 추가 제재 경고에도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오히려 대북제재 완화를 논의하겠다고 한다. 북-러는 나아가 한미일 3각 군사협력에 맞서 중국까지 포함한 3국 연합 군사훈련 같은 ‘반미(反美) 3각 연대’ 구축까지 꾀하고 있다. 크렘린궁은 “시진핑 주석과의 접촉이 연내로 계획돼 있다”며 중국에 대한 러브콜도 이어갔다.
지금 세계는 두 독재자의 만남 못지않게 그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꺼리는 중국으로선 일단 북-러 간 밀착에 거리를 두고 있다. 혹시라도 중국이 여기에 가담한다면 국제질서 파괴의 공범으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당장 북-러 간 불법 무기거래에 대해서도 방조하거나 묵인한다면 그 위신과 입지는 크게 흔들릴 것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책무를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