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화권에서 검은 고양이는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세실리아 보는 ‘시타와 사리타’(1921년·사진)에서 검은 고양이를 주인공처럼 그렸다. 고양이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 어깨에 올라서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화가는 왜 하필 검은 고양이를 그려 넣은 걸까?
1855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보는 엄마가 출산한 지 12일 만에 사망하는 바람에 외할머니와 이모의 돌봄 속에 자랐다. 외할머니는 늘 “시작한 모든 일은 완수해야 하고, 정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선지 보는 10대 때부터 치열하고 독립적이었다. 18세 때부터 미술 강사를 했고, 펜실베이니아 미술아카데미 졸업 후에는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파리 유학을 통해 인상주의를 배웠지만 자신만의 사실주의를 고수했고, 40세에 모교 최초의 여성 교수로 임명됐다.
이 초상화는 41세에 그린 원본을 프랑스에 기증하기 위해 25년 후 다시 그린 것이다. 모델은 사촌 찰스 레빗의 부인인 세라다. 제목 속 사리타는 세라의 스페인어 애칭이고 시타는 고양이를 지칭한다. 사실 이 그림은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응수이기도 하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악명 높은 ‘올랭피아’를 연상시킨다. 정면을 당당히 응시하는 벌거벗은 매춘부와 꼬리를 치켜든 검은 고양이의 성적인 암시 때문에 논란이 됐던 작품이다. 보는 전혀 다른 의미로 검은 고양이를 선택했다. 부모의 부재와 여자라는 불운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고양이의 눈빛에 투영한 듯하다. 실제로도 그녀는 스스로를 신여성이라 여기며, 남성 중심 사회에서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평생 독신으로 살며 치열하게 일했다.
운 좋게도 보는 40대에 이미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여성 화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전시를 하며 많은 상을 받았고, 87세로 사망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가르침대로 화가로서의 삶을 완수했고, 초상화로 한 시대를 정복한 위대한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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