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채점하지 않은 국가자격시험 답안지를 대량 파쇄해 물의를 빚었던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그전에도 답안지 누락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공단에 대한 감사 결과 답안지가 제대로 인수인계되지 않는 사례가 2020년 이후 최소 7건 있었다고 그제 밝혔다. 답안지가 분실됐는데도 응시자에게 알리지 않고 공단이 임의로 점수를 매긴 사례도 1건 확인됐다.
공단은 변리사 세무사 공인중개사 시험을 비롯해 각 분야의 기술사 기능장 기사 시험 등 500개가 넘는 국가자격시험을 위탁 관리하고 있다. 공단이 문제를 출제하고 시험을 시행한 뒤 답안지를 모아 지사의 금고에 보관하다가 본부의 채점센터로 이송해 채점하는 구조다. 그런데 답안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를 빠뜨린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7건은 답안지가 금고에 남아 있어서 나중에 채점이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사고가 반복되면 당연히 원인을 찾아 개선했어야 했다.
그런데 공단은 별다른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4월 실시된 기사·산업기사 시험에서 613장의 답안지를 지사의 금고가 아닌 창고에 보관하다 문제지 등과 함께 파쇄하는 대형 사고까지 일어났다. 감사 결과 당시 답안지를 인수인계하면서 수량을 확인하지 않았고, 파쇄기에 넣기 전에 내용물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기본 중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에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재시험을 치르느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해야 했고, 일부는 공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공단에서 관리하는 시험에는 1년에 약 450만 명이 응시한다. 국가가 공인하는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한 응시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험이다. 작은 오류도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적으로 관리하라고 정부가 공단에 시험을 맡긴 것이다. 그런데 사고가 잇따라도 손을 놓고 있다가 대형 사고로 문제가 외부에 드러나자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응시생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뼈를 깎는 쇄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땅에 떨어진 국가시험의 공신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