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재생에너지 행사에서 정부 관계자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최근 기업계 인사가 “신재생이 현 정부의 ‘적폐’로 낙인찍힌 사실이 실감난다”며 건넨 말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강경성 2차관은 지난달에만 ‘원전 수출 일감 설명회’ 등 원전 관련 행사 3곳을 직접 방문했다.
하지만 이 기간 강 차관은 신재생에너지 관련 행사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비현실적인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태양광 보조금 비리 등 신재생에너지 거품을 제거하겠다는 정책 방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주무 부처인 산업부 고위 당국자의 신재생에너지 행사 참여가 뜸할 정도로 관련 정책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식은 것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폭염 등 세계적 기후 위기로 ‘탄소중립’이 각국 에너지 정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당장 다음 달부터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됨에 따라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을 유럽에 수출하려면 분기별로 탄소배출량을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원전과 신재생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쌍두마차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에너지 정책의 정치화가 낳은 폐단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 외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등을 동원해 해외 주요 유전, 광산 등에 대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장기 투자가 필수인 광물자원 특성상 조기에 수익을 거두지 못하자, 문 정부는 자원 외교를 ‘적폐’로 규정하고 광물자원공사의 11개 해외 자산을 한꺼번에 매각했다. 2012년 219개였던 해외 광물 개발사업은 2021년 94개로 급감했다. 이 과정에서 우량 광산이 헐값에 팔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해외 자원개발은 최근 효자로 거듭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가스공사가 약 2조 원을 투자한 호주 프렐류드 가스전은 2019년 생산 개시 이후 2020년까지 적자였지만 이듬해 흑자로 바뀌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값이 급등해 이 가스전의 가치는 크게 올랐다.
2009년 확보해 총 8500억 원이 투입된 파나마 코브레파나마 구리 광산도 최근 자원무기화 흐름과 맞물려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 이 광산 역시 문 정부가 매각을 추진했지만 2021년부터 수익이 나자 이를 철회했다. 미중 갈등과 맞물려 공급망 안정화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해외 광물자원 개발은 이제 필수가 됐다.
에너지 정책의 정치화는 전기요금 책정에까지 마수를 뻗고 있다. 문 정부 내내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에도 여론을 의식해 전기료 인상을 억제한 결과, 한전은 부채만 201조4000억 원(올 6월 말 기준)에 이르는 부실 덩어리가 됐다. 전문가들은 원가를 반영한 요금 인상 외에는 한전 부실을 털어낼 묘안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둔 정부와 여당이 올 4분기 전기요금을 올리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문 정부가 넘어간 포퓰리즘이라는 ‘악마의 유혹’이 현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에도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만은 정권의 부침(浮沈)과 상관없이 ‘탈(脫)정치’의 영역에 속해야 국가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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