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 더 많은 한일 관계 개선이 이뤄져야 정권이 바뀌더라도 북한 중국 러시아 견제를 위한 한국 미국 일본 3국 협력의 가치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인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61)와 가와시마 신(川島眞·55) 일본 도쿄대 대학원 교수가 1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20층 CC큐브에서 대담을 갖고 이렇게 제언했다. 두 교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격 회동이 북한의 핵 도발 증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등으로 이어져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을 높이겠지만 인도태평양 전체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엔 비할 수 없다”며 “한미일이 안보, 경제, 민주주의 가치라는 3개 분야의 협력을 더 강화해 주변국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 북-중-러를 제어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일 관계의 추가 개선이 필수라는 것이다.
각각 중국, 대만에서 오래 생활한 가와시마 교수와 강 교수의 대담은 중국어로 진행됐다. 두 교수는 “한미일 협력의 목적은 일방적인 중국 견제와 반대가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라며 “다음에 중국 학자까지 포함시킨 대담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러 정상의 만남, 미국의 대러시아 추가 제재 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친다.
강준영 교수(이하 강)=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통해 ‘살아 있는 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를 고사시킬 수 있다면 수십 년 전쟁도 개의치 않겠다는 의미다.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 더 잦은 핵·미사일 도발 또한 불가피하다. 그 와중에 러시아는 북핵의 직접 위협에 놓인 한국에 되레 ‘북-러 밀착에 신경 쓰지 말라’는 뜻까지 밝혔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면 한국의 적국이 되는데 이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모든 면에서 잘못된 만남이다.
가와시마 교수(이하 가와시마)=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유엔이 금지한 북한과 무기를 거래하는 것은 자기부정이고 자가당착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도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역설적으로 북-러 밀착으로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인식 또한 강화됐다.
가와시마=한미일 정상의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 회동으로 3국 협력의 수준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갈 길이 멀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인도태평양이라는 큰 그림을 보기보다 북핵, 통일 등 북한 의제에만 몰두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국이 미국, 일본보다 러시아나 중국에 덜 강경할 뿐 아니라 친절하고 협조적이라고 여기는 이도 있다. 한국이 분단국임을 알지만 다른 나라가 한국처럼 북한 의제를 우선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에는 미세 균열조차 발생하면 안 된다. 세 나라가 일사불란하게 인도태평양 전체를 같이 포위해야 북-중-러를 모두 압박하고 견제할 수 있다. 주변국에 군사 위협을 강화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최근 행보를 보면 동아시아의 모든 곳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위험이 있다고 일본 정부는 여긴다.
강=동의한다. 다만 내수 비중이 큰 일본 경제와 달리 한국은 대중 교역의 비중이 높다. 북한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일본과 미국이 한국의 특수성을 더 이해해주면 좋겠다.
―한국과 일본의 추가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과거사가 있다.
가와시마=일본이 가해국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원자폭탄 피폭지인 히로시마 출신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상당하다. ‘한국의 약속을 믿을 수 없고 정권이 바뀌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또 물거품이 될 것’이란 두려움이 크다. 기시다 총리는 위안부 합의 당시 외무상으로 실무를 담당했기에 이 트라우마가 더 클 것이다. 그럼에도 기시다 총리가 윤 정부와 협력하고 있는 점도 평가해야 한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을 안다. 그래서 윤 대통령께 2보가 아닌 ‘3보 전진’을 부탁드린다. 현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서 더 많은 성과를 이뤄내야 정권이 바뀌더라도 ‘1보 후퇴’ 정도로 그칠 수 있다. 한국이 북한 관련 정보를 일본과 공유하면 일본 또한 이를 상당한 진전으로 여길 것이다.
강=한국 정치권이 반일 감정을 지나치게 이용한 측면이 있다. 현 중국공산당 또한 반일감정을 체제 유지 도구로 쓰고 있다. 한일 관계가 더 좋아지려면 양국 지도자의 지지율이 더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민간 교류 등 관계 개선 정책에 힘이 실린다. 이런 한국의 시도에 일본 또한 적극 화답하길 바란다.
―중국이 강경 일변도의 대외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와시마=생각보다 빨리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같은 보수파가 사회 전반을 장악했으며 정보기술(IT)의 발달을 사회 통제에만 이용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판이 된 미국의 전략적 선택도 중국의 부상을 부추겼다. 2001년 9·11테러 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했다.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고 경제 성장을 촉진시켜 주면 테러 대처 부담을 나눠 지고 세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이슬람국가(IS) 격퇴, 이란 핵협상 등에 치중했다. 그러다 중국의 힘이 급성장하고 전 세계 개발도상국이 중국의 영향력하에 놓이자 뒤늦게 일대일로를 강하게 견제했다. 중국 또한 ‘이제 와서 왜 이러냐’고 반발하면서 갈등이 격화했다.
강=시 주석은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대항하는 중국 중심의 또 다른 세계 질서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를 강조해 3연임에 성공한 만큼 그 기조를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 ‘경제’보다 ‘안보’를 중시하겠다는 거듭된 발언, 최근 경제난 조짐에도 ‘성장’보다 ‘분배’를 앞세운 ‘공동부유(共同富裕·다 함께 잘살기)’를 지속하겠다는 태도가 잘 보여준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도 중국 화웨이가 7나노미터(nm) 반도체를 탑재한 최신식 스마트폰을 내놨다. 규제 실패인가.
강=규제 전 사 놓은 반도체를 썼다는 설, 규제 우회를 통해 구입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사실 여부는 알기 어렵다. 다만 그래서 한미일의 안보 및 경제 협력이 더 중요해졌다. 이제 안보와 경제(공급망·기술 등)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양자의 경계 또한 희미하다.
가와시마=동의한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반도체 부족으로 적지 않은 사람이 칩이 내장되지 않은 종이 교통카드를 쓴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고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이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중국 경제의 위기에 대한 우려도 크다.
강=부동산 부실이 경제 붕괴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다. 위기가 더 전파되지 않도록 당국이 제어할 능력이 있고 증시 등도 안정을 찾고 있다. 다만 비슷한 위기가 또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중국의 성장세가 정점을 찍었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가와시마=전체적으로 괜찮지만 지역별 편차가 크다. 경제가 발달한 남동부와 달리 베이징과 북한 사이의 동북 3성(헤이룽장·지린·랴오닝성)은 민간 기업보다 혁신 능력이 떨어지는 국유 기업이 많아 위기에 많이 노출됐다. 시 주석이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홍수 피해를 입은 헤이룽장성을 찾은 것 또한 이곳의 민심 이반이 정권 위기로 번질 것을 우려한 탓으로 본다.
△가와시마 신(川島眞)
1968년 일본 요코하마생. 도쿄외국어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도쿄대에서 역사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2006년부터 도쿄대 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동아시아 정치, 미중 갈등 등에 관한 저서를 펴냈다. 2014∼2018년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S) 자문위원을 지냈다.
△강준영
1962년 충남 연기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대만 국립정치대에서 중국 정치경제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땄다. ‘한 권으로 이해하는 중국’, ‘현대 한중관계의 이해’ 등을 썼다. 현재 대통령실과 외교부의 자문위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