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예언자들의 경고 [임용한의 전쟁사]〈281〉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8일 23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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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시대는 대리석 조각의 전성기였다. 그중에서 최고의 걸작이 라오콘 상이다. 거대한 바다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아버지와 두 아들을 묘사한 이 작품의 배경은 트로이 전쟁이다. 오랜 포위에 트로이 최고의 장수, 헥토르까지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연합군은 도저히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포기 직전에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목마 작전을 제안한다. 트로이 목마 안에 병사를 숨기고, 그리스군은 철군한 척한다. 트로이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리스군이 남겨둔 목마를 승리의 상징으로 성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이때 트로이의 예언자 라오콘과 카산드라가 이것은 그리스군의 흉계라고 경고한다. 라오콘이 목마의 배를 창으로 찌르는 순간, 그리스 편이었던 포세이돈이 거대한 바다뱀을 보내 라오콘과 두 아들을 물어 죽인다. 라오콘 상은 이 극적인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카산드라도 목마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그리스 신들이 이미 카산드라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저주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날 밤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성문을 열었고, 트로이는 멸망한다.

작품으로 라오콘 상은 절망하는 인간, 죽음의 공포, 자신과 아들의 죽음과 조국의 멸망을 막지 못하는 좌절을 온몸과 표정으로 표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라오콘의 진짜 고뇌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중이 아닐까? 트로이 시민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기쁨에 너무나 뻔한 계략에 넘어갔고, 라오콘과 카산드라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은 트로이 멸망의 교훈인 동시에 고대 그리스 민주정의 고뇌였다. 그리스는 민주정의 전성시대를 열었지만, 진실보다는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망, 그 욕망을 이용하는 교활한 정치인들의 선동을 이겨내지 못했을 때 무너지고 말았다. 라오콘의 절망과 카산드라의 저주는 민주정의 고뇌에 대한 경고이자 절망이다. 작가는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트로이#트로이 전쟁#라오콘 상#임용한의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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