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화가들은 언제부턴가 성스러운 대상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조금씩 깨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작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성 토마스’(사진)도 그러한 사실을 환기하는 특별한 그림 중 하나다.
그의 그림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토마스의 의심을 주제로 한다. 토마스는 예수가 부활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믿지 않는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이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일주일, 아니 8일 후에 예수가 나타나서 그에게 말한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상처에 손을 넣어 보라는 예수의 말은 있지만, 토마스가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말은 없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의 말이 암시하듯 토마스는 스승을 보는 것만으로 의심을 풀었을 것이다. 따라서 카라바조는 복음서가 말하지 않은 것을 그린 셈이다.
그림을 보면 토마스는 스승의 옆구리에 집게손가락을 넣고 그것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있다. 이마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있다. 다른 두 제자도 같은 모습이다. 예수는 고개를 숙이고 토마스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고 있는데, 제자의 손가락을 상처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인지 아니면 고통스러워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잡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예수의 얼굴은 제자마저 자신을 믿지 못하는 현실 때문인지 슬프고 초췌해 보인다.
이런 그림을 꼭 그려야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카라바조는 그림을 우리에게 들이밀고, 못에 박힌 손을 만져보고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봐야 믿는 토마스가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음을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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