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1일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시했다. ‘올해 20세가 90세가 되는 2093년까지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지 않으려면.’ 이런 문제를 내고 모두 18개의 풀이를 썼다. 그중 정답은 5개로 추려진다.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올리고,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춰 ‘최적의 조합’을 찾으면 된다.
이번 보고서에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은 담기지 않았다. ‘아끼고 모아두자’는 재정안정론자와 ‘당장 쓸 곳이 많다’는 노후소득보장론자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아서다. 노후소득보장론자들은 “연금의 본질은 노후 안정이지 기금 적립이 아니다”고 한다.
다음 날인 2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다음 달 국회에 제출할 국민연금 개편안에 대해 “수리적·논리적 합리성보다 더 중요한 게 국민적 수용성”이라고 했다. 보험료율을 올리려면 소득대체율을 함께 올려야 개혁을 설득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국민연금은 2028년 소득대체율이 40%에 도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재 소득대체율은 31.2%다. 소득이 100만 원이었다면 연금을 31만 원 받는다.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은 노동시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늦게 취직해서 일찍 퇴직하는 구조에서는 보험료를 오래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보험료를 꾸준히 내기 힘든 사각지대도 넓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것보다 실제 수령 대상을 늘리고 오래 붓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노후소득보장론자들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2.2%)에 못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명 중 7명이 기초연금을 받는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OECD는 한국 기초연금(32만 원)의 소득대체율을 7.8%로 추산하고 있다. 복잡한 공식을 건너뛰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단순하게 합해 보자면 소득대체율은 38.7%로 뛴다.
내년 기초연금 예산은 20조 원이다. 10년 전에 비해 3.5배가 늘었다. 모두 세금이다. 여기에 국민연금 기금까지 고갈되어 ‘그해 걷어 그해에 주는’ 부과식으로 바뀐다면 다음 세대에는 재앙이다. 2050년이면 가입자 1명이 수급자 1명을 부양하는 구조가 되는데 보험료를 내다 생계를 꾸리기 힘든 수준이다. 더욱이 심각한 저출산 추세를 고려한다면 부과식 전환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려면 보험료율도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콤한 사탕’을 주면서 사탕값을 알려주지 않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소득대체율을 5%포인트, 10%포인트 올린다고 가정하면 각각 2.5%포인트, 5%포인트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고 본다. 보험료율을 단 1%포인트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국민이 수용할 수 있을까.
조 장관이 국민적 수용성을 언급한 인터뷰는 5년 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복지부가 보고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두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았던 일을 상기시킨다. 결국 지난 정부 내내 국민연금 개혁은 실종됐다.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을 내건 정부라면 달라야 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둣이, 국민적 수용성이 높거나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혁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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