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 단테는 베아트리체와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유명하다. 단테는 아홉 살 때 여덟 살 베아트리체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베아트리체를 천사와 같이 순결한 존재로 여겼기에 평생 가슴에 품고 살며 문학적 영감을 얻었다.
단테를 흠모했던 19세기 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는 자신의 아내 엘리자베스 시달을 베아트리체에 비유해 그렸다. ‘축복받는 베아트리체’(1864∼1870·사진)에서 시달은 두 눈을 감고 황홀경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붉은 비둘기가 양귀비꽃을 물고 와 그녀의 두 손에 떨어뜨리려 하고, 배경에는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시달은 로세티를 포함한 ‘라파엘 전파’ 화가들이 흠모하던 모델이었다. 라파엘 전파는 1848년 런던에서 결성된 젊은 예술가 그룹으로, 라파엘로 시대 이전인 중세로 돌아가 자연 묘사에 충실하고, 도덕적이고 성스러운 주제를 그리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그리 도덕적이지 않았다.
로세티는 시달과 사귄 지 10년 만에 결혼했지만, 그 사이 늘 바람을 피웠다. 그 때문에 시달은 우울증과 약물 중독에 시달리다 결혼 2년 만에 33세로 사망했다. 로세티가 이 그림을 그린 것도 아내가 죽은 지 2년이 지나서였다. 죽음의 사신인 붉은 새와 죽음을 상징하는 양귀비꽃이 그려진 이유다. 로세티는 죽은 아내를 베아트리체와 동일시하며 숭고한 사랑의 상징으로 영원히 화폭에 남기고 싶었을 테다.
아내 사후 로세티는 단테의 삶을 살았을까? 그럴 리가. 평생 새로운 베아트리체를 갈구했다. 심지어 친구인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와 10년 동안 불륜 관계를 맺었고, 한 집에 세 사람이 동거하기도 했다. 순수한 사랑은 중세 시인에게나 가능한 법, 19세기 젊은 화가에겐 그저 이상과 환상일 뿐이었다. 모순된 인생의 끝이 좋을 리 없는 법. 그 역시 약물 중독과 정신불안에 시달리다 54세에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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