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제 패권 전쟁에 따른 고립 속에서도 중국의 과학기술 역량이 공격적 연구개발(R&D) 투자에 힘입어 급속히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국제 학술계가 분석했다. 반면 한때 ‘과학 지출 분야의 챔피언’ 소리를 듣던 한국에선 정부의 R&D 투자 삭감 결정으로 과학기술계가 쇼크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과학계의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옮겨 갔다”고 진단했다. 서구 선진국들의 견제로 해외에서 활동하던 중국인 과학자, 연구자들이 복귀하면서 중국 내 과학 수준이 높아지고, 연구논문 수 등으로 평가한 영향력도 미국을 추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20년 중국의 R&D 투자가 4년 전보다 46% 급증한 것이 그 원동력이 된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투자는 각각 27%, 11% 증가에 그쳤다.
한편 다른 학술지 사이언스는 “한국 정부가 갑작스럽게 내년도 R&D 예산을 삭감해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말 ‘나눠먹기식 R&D’ ‘R&D 카르텔’이라고 비판한 직후 올해 31조1000억 원인 정부 R&D 예산이 내년에 16.7%, 5조2000억 원이나 축소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사이언스는 10년 전 국내총생산(GDP)의 3.9%였던 한국의 R&D 비중이 작년에 4.9%로 높아져, 5.9%인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재조정된 내년 예산안은 모호하고, 예산 삭감과 관련해 정부가 현장의 연구자들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선진국들로부터 첨단장비 수출통제 등으로 견제를 받는 중국은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목표로 R&D 투자를 더 강화하고 있다. 화웨이가 최근 중국산 7나노미터급 반도체 칩이 포함된 스마트폰을 공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과 경쟁하려면 한국은 강점이 있는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분야의 기초기술에 더 많은 투자를 쏟아부어야 한다.
경기나 재정 상황에 부침이 있더라도 나라의 미래가 걸린 R&D 투자까지 심하게 요동을 쳐선 곤란하다. 여야는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삭감한 R&D 예산을 되살려 충격에 빠진 과학기술계의 우려를 종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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