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후배가 책을 냈다. 본인 표현대로라면 미친 팽이처럼 갤러리와 미술관, 아트페어와 작가들의 작업실을 넘나들며 채집한 내면의 기록이다. 지난주에는 그 후배를 아끼는 또 한 분의 갤러리 대표가 갤러리를 북토크 무대로 바꾸어 내주었다. 모더레이터를 맡아 현장에 가 보니 이리 근사할 수가 없었다. 책의 커버와 주요 지면을 트레이싱지에 인쇄해 붙이고 접견실 테이블 위에는 무화과와 치즈, 와인과 떡을 공예 작가들의 작품에 담아 올려 두었다. 후배가 사랑받고 있음을 징표처럼 보여주는 손길들. 멋지다는 호응에 갤러리 대표님이 하신 말씀은 이랬다. “제가 깊이 애정하는 후배들. 나 나이 들어도 같이 놀아주라고 기쁜 마음으로, 행복하게 아부하는 거예요.” 최고의 애정 표현이자 아부 아이디어라며 물개 박수를 쳐 드렸다.
갤러리 대표님의 선한 마음과 더불어 동시에 떠오른 것은 그날 북토크의 주인공인 후배의 됨됨이였다. 같은 동네에 살아 그녀의 심성과 마음 씀씀이를 여러 번 경험했다. 시어머니가 반찬을 많이 보내 오셨다며 나눠 주고 외출하는 길에 와인을 문 앞에 놓고 가기도 했다.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는 한 자 한 자 깊은 위안이 되는 응원과 염려를 보내왔다. 부부 동반으로 만나 그녀 집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신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 후배였으니 북토크에서라도 선배의 마음을 열심히 표현할 수밖에. 순수한 기쁨과 열심으로 정말 즐겁게 했다.
직접 운영하는 갤러리에서도 최근 뜻깊은 전시를 마쳤다. 35년간 서울에서 잡지사 사진 기자로 일하다가 전남 구례로 내려가 사과꽃이며 목화꽃, 부추꽃과 가지꽃을 찍는 박성언 작가님의 전시. 순하고 평범한 작물과 과일이 그리 예쁘고 화사한 꽃을 피워 올리는지 미처 몰랐다. 블랙 바탕에 찍은 꽃들은 마치 검은 우주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존재들 같았다. 작가님 전시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왔다. 환갑에 맞는 첫 전시라서도 그랬을 것이다. 구례와 서울, 광주와 서울에서 친구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었고 꽃과 빵, 미소와 포옹이 수북이 쌓였다. 우정과 의리야말로 인간관계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작가님 딸과 친구들도 많이 왔는데 작가님이 웃으며 말했다. “얘네들이 구례에 와 놀다 갔는데 아침에 보니 술병이 엄청나더라고요.”
시간과 공간은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도 있다. 그리고 그 시공간을 친구들과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이들만이 나를 전시하는 무대에서 뜨거운 축하와 응원을 받는 것 같다. 나에게로의 초대, 기쁘고 행복한 결과를 위해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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