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오늘 밤 저 달을 띄워, 온 세상을 한바탕 씻으려 하네. 더위 물러나자 높은 하늘 더없이 깔끔하고, 가을 맑은 기운에 만상이 산뜻하다. 뭇 별들은 달에게 광채를 양보하고, 바람결에 이슬은 영롱하게 반짝인다. 인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유유자적 저 신선의 세계이려니. (天將今夜月, 一遍洗寰瀛. 暑退九霄淨, 秋澄萬景清. 星辰讓光彩, 風露發晶英. 能變人間世, 翛然是玉京.)
―‘8월 15일 밤의 달 감상(8월15일야완월·八月十五日夜玩月)’ 유우석(劉禹錫·772∼842)
옛 시에 등장하는 한가위의 달은 으레 향수, 그리움, 고독과 함께하거나, 때로 원(圓·모나지 않음)과 만(滿·넉넉함)을 희구하는 이들의 간절한 소망과 연결되어 있었다. 달빛 아래 독작(獨酌)하면서 이백은 ‘잔 높이 들어 명월을 맞이하니, 그림자까지 모두 셋이 되었네’라며 자위했고, 두보는 ‘이슬은 오늘 밤부터 더 희어지고, 달은 고향 달만큼 밝기만 하다’라며 뿔뿔이 흩어진 두 동생을 그리워했다. 또 소동파는 세상사의 득실을 달에 비유하면서 ‘인간에겐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있고, 달에는 흐림과 맑음, 둥금과 이지러짐이 있는 법’이라 토로하며 ‘그저 바라건대, 우리 오래오래 살아서 천 리 멀리서도 저 고운 달을 함께 즐겼으면’ 하고 기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삶의 애환 속에서 달은 친근한 동반자이자 위안이었다.
유우석의 달은 좀 독특하다. 팔월 한가위, 시인은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세상을 밝고 청량하게 비추는 달빛 세례를 찬양한다. 하늘은 저 둥근달을 통해 이 세상에 무한의 광채와 윤기를 선사한다. 시인도, 우리 모두도 오늘 하루, 신선이 머문다는 저 광대무변의 월세계가 인간 세상의 온갖 혼탁과 암울을 말끔히 씻어주리라 믿고 싶어진다. 중추(仲秋) 보름달에게 이리도 고결하고 엄중한 임무가 부여되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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